원효대사가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장소가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의 당성(唐城) 일대라는 학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동안 원효대사의 깨달음 장소는 막연하게 추정될뿐 구체성을 띄지 못했으나 중앙대 역사학과 진성규 교수(사진)가 문헌 기록과 대중 교역현황 분석 등을 통해 이같은 주장을 제기하며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진 교수는 지난 8일 수원대학교에서 화성시, 화성문화원, 해외민족연구소가  '당성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주제로 공동주최한 학술회의에서 중국 송대(宋代)의 승려인 찬녕(贊寧)의 저술 송고승전(宋高僧傳)을 인용해 "원효가 의상과 같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기 직전에 잠을 청했던 곳은 당성 즉, 지금의 남양만 일대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송고승전에 의상이 바다의 바다의 관문인 당주(唐州) 지역에 도착해 큰 배를 구해 창파를 건네려고 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여기서 당주는 당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또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원효가 의상과 함께 당 유학길에 올랐던 661년, 당성은 신라가 중국과 왕래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면서 "원효는 이곳에서 배를 타고 당나라로 건너갈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현재 당성이 있는 화성시 서신면을 비롯한 남양만 일대는 본래 백제 땅이었으나 고구려 장수왕이 한성을 점령하면서 당성군(唐城郡)이라고 하였고, 이후 신라의 영토로 바뀐뒤 경덕왕때 당은군(唐恩郡)으로 개명됐다.

 진 교수는 "오늘날 당성이야 말로 원효로 하여금 한국불교의 철학적 체계를 완성하고 불교대중화의 기치를 올리게 한 위대한 출발점이다"고 평가했다.

 당성은 서해안이 한눈에 보이는 남양반도 중심인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구봉산 일대에 축조된 길이 1.2㎞ 규모의 삼국시대 산성으로 1971년 사적 제127호로 지정됐다.

 한편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당성 일대 고대유적의 분포상황과 그 의미(권오영 한신대 교수) △당성 발굴의 고고학적 성과와 과제(배기동 한양대학교 박물관장) △7~9세기 동아시아 해상교통과 당성(권중달 중앙대 명예교수) △당성의 자연과 정신문화 자산을 연계한 힐텍적 체험문화관광 트랜드 조성방안(박헌렬 중앙대 교수) 등 당성에 대한 다양한 논점들이 발표됐다.

 김진원 화성시 학예연구사는 "당성의 역사적 사실과 현대적 의미를 조망하는 사실상 첫번째 학술회의였다"면서 "향후 화성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찾는데 중요한 지표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