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과 악법. 특히 악법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은 다르다. 민주화시대에는 악법의 대명사로 국가보안법이 거론되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면서 악법으로 지목되는 법률도 변하고 있다. 도로교통법위반으로 범칙금을 납부한 사람은 도로교통법을,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 혐의로 영업정지를 받은 사람은 식품위생법을, 불법건축혐의로 벌금을 낸 사람은 건축법을 악법으로 생각한다.

자신들의 활동 범주나 이해관계에 따라 악법으로 생각하는 기준이 다른 것이다. 물론 상황이나 신념에 따라 법을 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법률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거나 법적제재를 받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법률에 대해 일종의 불만을 토로한다. 사실 법은 일반성을 지니고 있어, 개별적 상황이나 개인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모든 법률이 위헌이라는 시각 또한 올바르지 못하다.

대통령이 제기하고 있는 선거법이나 공무원법도 마찬가지다. 물론 대통령이 주장한대로 선거관련법에 위헌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에 대한 이해도 선관위나 야당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대통령의 자리를 공무원의 잣대로 보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정치적 권리의 잣대로 보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쟁이 그것이다. 사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본래 의미의 공무원과는 달리하여 공무원법이나 관련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통령이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결정에 반기를 들면서 반복해서 위법을 감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이다. 선거법이나 공무원법에 문제가 있다면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마련한 후 절차를 통해 개정하는 것이 순서다. 악법이라고 생각한다면 개정할 방법은 많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나서서 선관위의 결정을 반복해서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선거법 위반으로 법적제재를 받더라도 법률의 위헌문제를 따지겠다고 하는 것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헌법기관이다. 그런데도 일부 국민들이 가진 악법에 대한 시각으로 행동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대통령이 모든 일에 모범이 아니어도 좋다. 그러나 나서서 위법을 감행하지는 말라. 그것이 바로 국민들이 보내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