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민간인학살, 경기도에선 잊혀졌나'.

지난해 11월 30일 진실화해위원회는 6·25전쟁을 전후해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숨진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진상규명신청을 마감했다.

경기도에선 모두 290명이 신청했다. 도내에서 발생한 학살사건 가운데 최근까지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개시 결정을 내린 건 194건이다.

전국 광역지자체 중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경기도지만 진상규명 신청건수로만 보면 전체 9천609건 중 단 3%에 불과하다. 북한과 맞닿아 있어 전선이 수시로 이동, 좌·우익 양쪽에 의한 피해가 많았는데도 전남(2천510건)과 경남(1천107건), 충북(721건) 등에 비해 신청건수는 현저히 적었다.

시민단체들이 민간인학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활발히 활동하는 타 지역과 달리 고양금정굴공대위 외 시민단체도 전무하다.

왜 이럴까. 막대한 인구이동과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숨가쁜 개발에 밀려 과거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여기에 냉전과 군사독재시대를 거치며 고착된 두려움. 50년이 넘게 지났어도 '빨갱이'란 낙인 속에 도사린 공포가 아직도 유족과 목격자 등의 입을 무겁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평지역에서 수년간 자료를 모아 '한국전쟁 양평전란사략'이란 책을 펴낸 경원대 장삼현 교수는 "그 시기를 거친 사람들은 당시 겪었던 일이 드러날까봐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다"며 집필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있지만 희생자들의 유해는 개발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여전히 도내 곳곳에 남아있다.

경인일보가 처음 보도한 안성시 보개면 기좌리 야산, 용인시 원삼면 비둘기굴과 대명광산, 김포시 하성면의 공동무덤 등은 희생자 유해발굴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위치도 참조>

특히 기좌리의 야산과 김포 하성면의 공동무덤 두 기는 땅만 파면 바로 유해를 찾을 수 있는 명확한 유해매장지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올해 약 10억원의 예산을 들여 전남 구례 봉성산, 충북 청원 분터골,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 대전시 동구 낭월동 등 4곳에서 유해발굴을 추진한다. 제주에선 '4·3사건' 희생자 유해발굴이 지난해 시작됐고, 충청북도 및 영동군도 곧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유해발굴을 시작할 예정이지만 도내에는 단 한건의 발굴계획도 없다.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는 "올해 경기도에서도 '유해 매장 추정지 조사 용역'을 진행중이지만 예산문제 등으로 발굴은 내년 이후에나 고려할 예정"이라고 밝혀 도내에서 민간인희생자들의 유해가 발굴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유해는 남았지만 57년간 묻혀있는 한많은 유해에 빛이 들 날은 아직도 요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