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도 장대비가 내렸던 수원 화성행궁 신풍루에는 12일 오후가 되자 푸른 하늘 아래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한달 전, 수원시 관계자가 장맛비를 우려하자 김금화 만신은 "진혼제가 열리는 12일은 하늘이 맑을 것"이라며 비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이날 오후 6시 신풍루에서 사도세자의 진혼제가 열렸다. 사도세자는 245년전 오늘 아버지 영조의 노여움을 사 뒤주속에서 한많은 생을 마감했다.

행사장은 시작도 하기 2시간 전에 이미 400석의 의자가 꽉 찼고 600여명은 대형스크린으로 구경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진혼제 주관자가 김금화(77) 만신이라고 알려지자 수원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그를 보기 위해 행궁을 찾은 것이다.

김금화 만신은 대구 지하철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굿을 하는 등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잘 알려져 나라만신으로 불린다.

행사 시작 20분전, 사도세자가 만들었다는 '무예신보'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수원시 향토문화재 21호 '무예 24기'의 공연은 화려한 무술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창·봉·검술 공연에 이어 대나무 자르기와 짚단 베기를 하는 장면에서는 그저 놀랍다는 표정들이다.

오후 7시, '주당을 물리고 구청을 맑게 정화한다'는 신청울림을 시작으로 진혼제가 시작됐다.

두번째 굿거리인 '상산부군맞이'를 하려 김금화 만신이 모습을 보이자 관람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휠체어를 타고 온 윤모(59·여)씨는 "이곳에서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리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며 "오늘 그의 남편인 사도세자의 진혼식이 열린다고 해서 불편한 몸이지만 일부러 왔다"고 했다.

'상산부군맞이'에는 김용서 수원시장과 홍기헌 수원시의회의장도 갓을 쓰고 참여했다.

김금화 만신이 사도세자의 한 맺힌 목소리와 비슷한 넋두리같은 신음소리를 토해내자 1천여명의 구경꾼들이 집단적으로 체면에 걸린듯 일순간 조용해졌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여 이제 편히 쉬소서." 그가 혼신을 다해 진혼제를 이어가는 내내 관람객들은 넋을 빼앗긴듯 했다.

김금화 만신은 행사전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도세자 진혼제는 이번이 처음으로 특별하고 좋은 일인 것 같아 흔쾌하게 승낙했다"며 "모든 정성을 다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도세자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편하게 보내드리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