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사는 한 할머니가 집안의 곰팡이 문제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냈더니, 현관문 위쪽 벽에 구멍을 뚫었어요. 겨울철 안팎의 기온차가 커 습기가 생겼고, 그게 결국 곰팡이로 번졌다면서요. 이해되는 해결책입니까. 그 할머니는 한겨울 그 구멍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그대로 맞고 삽니다. 마치 제 가슴에 구멍이 뚫린 기분이었습니다."

부평구 삼산1택지지구 내의 주공4단지 임대아파트에 사는 한 주민(47)의 얘기는 집단화 한 임대아파트의 복지현실이 얼마만큼 열악한 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이름을 밝히기를 극도로 꺼렸다.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서였다.

이 곳의 절반 가까운 세대가 곰팡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말도 제대로 못꺼낸다고 한다.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이 있는데, 쫓겨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불만을 제기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임대아파트는 늘 부실시공 의혹을 사고 있다.

'복지'를 '만족할 만한 생활 환경'이라고 정의할 때 저소득층을 위해 건설했다는 현재 우리의 임대아파트는 오히려 복지 사각지대나 마찬가지다. 누가 그 곳에 살게 되는 지, 그 곳엔 무엇이 필요한 지 등에 대해선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공급자 위주의 건설정책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지어진 남동구 논현주공 국민임대아파트의 현실도 복지와는 동떨어져 있다.

사는 사람을 구분짓는 말부터 차별이 시작된다. 분양아파트 사람들은 입주자라 부르고, 임대아파트 사람들은 임차인이라고 한다. 대표자의 격도 다르다. 분양 쪽에선 동대표회의에서 관리와 운영 권한을 갖지만 임대에선 운영권한이 전혀 없다. 관리비도 주택공사에 입금해야 한다. 그러니 임대아파트에선 서로 동대표를 맡지 않으려고 꺼린다.

복지와 관련한 시설이나 예산도 저소득층이 집단화한 임대아파트 현실을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노인층이 많으면 그에 맞는 노인복지시설이 있어야 하고, 맞벌이 부부가 많으면 청소년시설과 학생 방과후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어야 하지만 실제는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이를 지켜봐야 하는 일선 행정기관의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각종 지원책을 정부에 건의해도 쇠귀에 경읽기라고 한다.

남동구의 한 사회복지사는 "국민임대아파트를 한 곳에 몰아 넣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계획을 세울 때 아무런 복지대책이 없이 그냥 짓고 보자는 식의 정책이 더 큰 문제"라면서 "대단위 국민임대아파트 건설에 따른 복지관련 제반 문제는 원인자라고 할 수 있는 정부와 주택공사가 앞장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