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건설업자 김상진(42)씨를 둘러싼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의혹의 상당 부분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어 향후 검찰 수사가 주목된다.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김씨가 정 전 비서관을 통해 국세청에 세무조사 무마청탁을 한 사실이 확인됐고 재개발사업과 관련, 사업지 관할 단체장에게 1억원이 든 돈가방을 건넨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씨의 전방위 로비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씨 전방위 금품 로비 = 지난달 31일 김씨가 빼돌린 돈의 '소비처' 확인을 위한 검찰의 보완수사 결정 이후 김씨의 로비실체가 하나씩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선 김씨가 2003년 정 전 비서관에게 지구당 사무실 경비조로 2천만원을 건넨 것으로 확인되면서 김씨와 정 전 비서관의 밀착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고 있다.
2천만원은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돈이다. 그것도 한꺼번에 통장에 넣어 주었다는 것은 합법적인 돈 이긴 해도 미래에 있을 어떤 반대급부를 기대하고 줬을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지난해 7월 부산지방국세청의 세무조사 칼날이 다가오자 김씨는 곧 바로 정 전 비서관에게 도움을 청했고, 정 전 비서관은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에게 몇차례 전화를 걸어 "한번 만나주라"거나 "김씨를 잘 봐 달라"는 취지로 압박했다.
당사자들의 주장은 다르지만 부산국세청은 결과적으로 김씨가 실소유주로 있는 연산동 재개발사업 시행사 I건설에 대한 세무조사를 중단했고, 김씨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정 전 청장에게 1억원을 건넸다.
김씨는 또 6월30일 재개발사업지가 있는 부산 연산동의 관할 자치단체장인 이위준 구청장에게 1억원이 든 돈가방을 건넸다.
연제구청은 이 청장이 돈가방을 받기 하루 전 김씨가 연산8동 16만7천㎡ 부지에 1천440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짓겠다며 부산시에 제출한 지구단위계획안에 대한 검토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밝혀져 돈가방은 이 사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제구는 검토의견에서 I건설이 신청한 용적률 291.85%를 285%, 층수제한은 평균 37층에서 평균 35층으로 소폭 조정하는 수준을 제시, 김씨의 계획안에 근접하는 검토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돈가방의 성격을 자연스럽게 추정해볼 수 있는 정황들이다.
이밖에 2-3명의 지방의원들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김씨로부터 제3자를 통해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금품로비가 전방위로 이뤄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검찰 수사재개..떨고있는 정.관계 = 검찰은 김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한 이후 정 전 비서관의 김씨 비호의혹이 언론을 통해 확산되고 한나라당도 특검을 주장하고 나서자 지난달 31일 보완수사에 나서기로 전격 결정했다.
부산지검은 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려, 김광준 특수부장을 주임검사로 지정하고 특수부 검사 3명 외에 별도로 2명의 검사를 추가로 배치해 수사팀을 검사 6명, 일반 수사관 8명으로 늘리는 등 수사팀을 대폭 확대했다. 행정요원까지 포함하면 수사팀은 42명에 이른다.
특히 김씨가 빼돌린 돈의 사용처를 찾아내기 위해 대검 계좌추적 전문 수사관 7명을 수사팀에 투입했다.
상고 출신으로 회계에 능통한 김씨는 빼돌린 돈을 이중삼중으로 세탁해 돈의 꼬리를 철저히 감췄지만 지난해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입의혹 사건을 비롯, 굵직굵직한 금융사건 수사에 투입돼 큰 성과를 올린 대검 계좌추적 전문 수사관의 추적을 피해가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전문 수사관의 수사에서 빼돌린 돈의 최종 소비처가 정.관계로 드러날 경우 이번 사건은 부산지역 정.관계를 뒤흔들 메가톤급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다 지난 7일 김씨가 긴급체포에 이어 다시 구속됨에 따라 그의 진술 한마디 한마디에 정치권과 지역 관계가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김씨는 지난 7일 SBS와 인터뷰에서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준 후원금보다 많은 돈을 다른 사람에게 준 적이 있다"고 밝혔고 측근의 발언형식으로 "우리가 입을 열면 여럿이 다친다"고 경고한 바 있다.
김씨와 측근의 이런 발언은 검찰 수사과정에서 금품로비대상자를 추가로 밝히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검찰도 빼돌린 돈의 '소비처'를 반드시 밝혀낸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정.관계 인사들의 줄소환이 예상된다.
검찰 관계자는 "향후 수사는 김씨에 대한 계좌추적결과를 바탕으로 김씨의 진술이 보태지는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지역 정.관계가 숨을 죽이고 김씨의 입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