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에 웃음 꽃이 피었다. 추석연휴를 이틀 앞둔 20일 미군기지촌인 의정부시 고산동 빼벌마을 전춘자(67) 할머니 집에서는 기분좋은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좋아해보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사람 보는게 무서웠는데…. 이번 추석은 정말 잊지못할 겁니다."

미군 캠프 스탠리 부대 정문을 지나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가야 하는 전 할머니 집은 양공주 출신 할머니 3~4명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고 있는 곳이다.

금방 불이라도 날 것 같은 낡은 전기 배선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고 냄새나는 얼룩진 장판이 깔린 쪽방들이 뒤엉켜 토굴 같았던 허름한 판잣집은 이날 대변신을 했다.

양공주 출신이라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피해 서로를 의지하며 살던 이들 할머니 집에 건장한 청년 15명이 쪽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팀은 어두컴컴하던 방에서 낡은 자개농과 오래된 라면박스등을 들어낸뒤 깨끗한 새 장판을 깔았고 또 다른 한팀은 전기스위치와 콘센트, 전등을 새로 교체했다.

나무막대에 비닐을 붙여 만들었던 창문과 대문도 번쩍이는 새하얀 새시로 바뀌었다.

궁핍했던 60년대, 정부에는 외화벌이의 역군으로, 가족에게는 생계를 책임 진 가장으로 일했으면서도 지금은 버림받은 채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양공주 출신 할머니들의 고단한 삶을 보도한 기획기사(경인일보 5월8일자 3면 등보도)를 보고 한국전력 경기북부지사 사회봉사단 15명이 이곳을 찾은 것이다.

전 할머니는 "매번 명절이면 TV에서 고향가는 사람들을 보고 너무나 부러워 한없이 신세를 원망했었다"며 "이번 추석에는 우리를 찾아주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도와주려는 주위사람들도 생겨 정말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본보의 보도 이후 국민식품(대표·서홍석)은 이들 할머니들에게 매달 순대 50인분을 전달하고 있고 S의류회사는 각종 면티와 양말 등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 의정부지역 봉현생고기 음식점과 정수사 일식집등 20여곳이 이들 할머니들에게 매달 먹거리와 입을 거리를 전해주고 있다.

또 한 독지가는 이달 초 영정사진조차 없이 쓸쓸이 세상을 등진 양공주출신 할머니의 사연(경인일보 9월6일자 22면보도)을 전해듣고 빼벌을 찾아 이들 할머니들의 영정사진을 무료로 찍어 주고 있으며 다음달 5일에는 기지촌 할머니들의 합동 생일 잔치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