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연휴 경기도 최북단이자 접경지역인 연천군에는 명절과 어울리지 않는 현수막들이 내걸렸다.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씌어진 현수막 옆에 '국가균형발전정책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자리를 함께 했다. 편도 1차로 도로를 따라 들어선 작은 마을 어귀에도 이 생뚱맞은 내용의 현수막들이 나풀거렸다.

주민들은 왜 추석에 이런 현수막을 걸었을까.

민족의 명절 추석이 돼도 여전히 한적한 연천의 마을.  사람도, 차도 뜸한 그곳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반감이 타오르고 있었다. 연천 뿐만이 아니다. 중첩된 규제에 신음해온 경기북부와 동부지역은 물론 인천에서도 국가균형발전정책에 반발하는 기류가 급속히확산되고 있다.

참여정부의 1단계 국가균형발전정책이 공공기관들의 지방이전이었다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2단계는 기업들의지방 이전이 핵심이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지역분류 시안처럼전국을 발전 정도에 따라 4개 지역으로 나눠 조세 등을 차등 부과, 기업들이 알아서 수도권 밖으로 떠나도록만드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수도권 집중화를 해소, 전국이 모두 잘 살자는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게 정부의 목표다.

'다 함께 잘 살자'는 취지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도권 집중화와 그로 인한 폐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상하게 다른 지역에서는 별 말이 없는데 유독 경인지역만 벌집을 들쑤셔 놓은 것처럼 난리다. 밖에서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지역이기주의의 발로로 해석할 여지도 충분하다. 하지만 반발의 중심인 지자체나 상공인,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의 주장 사이에는 교집합이 형성된다. 낙후된 경기북부와 동부지역까지 수도권이란 하나의 덩어리로 묶은 비합리적인 지역 분류가 대표적이다.

# 수도권이란 이름의 멍에


지역분류 시안에 따르면 정부는 전국의 시·군·구에 지표를 적용해 낙후지역(Ⅰ), 정체지역(Ⅱ), 성장지역(Ⅲ), 발전지역(Ⅳ)으로 나누고, 수도권은 무조건 1등급씩 상향시킨다. 수도권은 서울시와 경기도, 인천시 등 3개 광역단체를 의미한다. 전국을 4개 지역으로 나눠도 수도권을 제외하면 발전지역은 단 한 곳도 없다. 경기도에는 낙후되거나 정체된 지역은 없고, 성장지역(동두천시·양주시·연천군·포천시·가평군·양평군)과 발전지역(나머지 시·군)만 존재한다. 반면 수도권은 아니지만 누구나 발전된 도시로 알고 있는 부산시와 대전시, 울산시 등은 성장지역일 뿐이다.

발전 지역인 여주군과 정체지역인 강원도 춘천시를 놓고 보면 지역분류의 모순이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2005년 기준 여주 인구는 10만5천여명이지만 춘천시는 두배가 넘는 25만5천명이었다. 여주의 지방세 징수액은 1천억원 정도로 춘천의 68% 수준이다. 5인 이상 제조업체는 춘천(2천500여개)의 9.8% 밖에 안되는 256개였다. 숫자를 나열하지 않더라도 여주와 춘천에 한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춘천이 발전된 지역은 아니지만 그래도 강원도청 소재지다. 군 단위인 여주보다 두 단계나 덜 발전된 도시라는데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발전지역인 오산시와 성장지역인 부산시 역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오산은 부산에 비해 인구수 58%, 지방세 징수액 78%, 제조업체수 36% 수준에 불과하지만 정부는 오산에 부산보다 더 잘 사는 도시라는 영예를 안겼다.
<그래프 참조>

# 지역분류 지표, 공정성과 객관성 결여

지역분류를 위해 선정한 지표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도 경인지역에서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중요한 이유다.

우선 정부가 내세운 인구, 산업·경제, 재정, 복지, 인프라 등 5개 분야 14개 지표에 실업률과 1인당 GRDP(지역내 총생산) 등 의미있는 지표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실업률과 1인당 GRDP는 선진국에서 지역을 분류할 때 꼭 사용되는 지표들이다. 이런 지표가 빠진 대신 인구밀도와 인구변화율 등 인구 관련 지표에는 높은 가중치가 부여됐다.

인구가 많으면 발전 정도가 높아져 인구가 많이 밀집된 경인지역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1천명 당 총사업체 종사자 수와 총사업체 종사자 변화율 등도 인구와 밀접한 지표이고, 재정력지수·지방세징수액·지방세징수액 변화율은 유사한 지표들이다. 수도권을 표적으로 삼은 지표 선정이라는 뒷말이 무성한 이유다. 도 관계자는 "지표 중 하나인 도로율은 총면적 대비 도로면적인데 이런 지표는 균형발전보다는 비수도권을 배려하기 위한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오히려 군사시설보호구역, 상수원보호구역 등이 지표로 사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천의 경우 강화군과 옹진군이 각각 정체지역, 성장지역으로 분류됐고, 나머지 8개 구는 발전지역에 포함됐다. 섬으로만 이뤄진 옹진이 성장지역인 것도 그렇지만 인천 도심에서 가장 낙후된 동구가 발전지역으로 분류됐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인천 동구가 발전지역이라고 하면 인천시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고, 안상수 시장도 "강화군과 옹진군의 차이가 무엇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수도권에 집중된 기업을 덜 발전된 지역으로 분산시키겠다는 2단계 국가균형발전 종합 대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고개를 들고 있다.

총량은 그대로인데 단순히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만 하는건 국가경쟁력에 전혀 도움이 안될 뿐 아니라 힘들게 쌓은 현재의 경쟁력마저 상실, 결국 하향 평준화로 치닫게 된다는 주장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전할 경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과 이전 기간 동안의 공백이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고, 여건이 안돼 이전이 어려운 중소기업에겐 그대로 남아있는게 또다른 경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수도권에서는 계속 신도시 건설과 택지개발을 추진하면서 기업들만 밖으로 나가라는 것도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경기개발연구원 김은경 박사는 "정부의 정책은 경쟁력있는 지역의 것을 빼내 낙후된 지역에 준다는 발상으로 경쟁력있는 지역이 생산한 가치를 지역에 나눠주는 선진국의 균형 발전과는 다르다"며 "생색내기에 그치고 마는 정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국론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2단계 정책은 기업을 지방으로 이전시키기 위한 유인책이지 국가균형발전이 아니다"고 말했다.

# 합리적인 대안은

이미 경기도는 정부의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헌법에 명시된 '저항권'까지 거론하며 합리적인 결정이 나올 때까지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강경한 태세다. 도는 실업률, 1인당 GRDP 등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지표를 선정하고, 수도권을 무조건 1등급 상향조정하는 시안을 보완이나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발전지역에서도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뤄온 중소기업에게는 현행 세제감면 제도를 유지해 줄 것을 건의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 주도로 밀실에서 추진하는 방식을 철회하고, 1단계 균형발전 정책에 대한 투명한 평가 뒤 정부와 지자체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연구기관을 설립해 추진하는 방안도 제안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국가안보를 위해 60여년간 고통받아온 경기북부 접경지역과 상수원 보호를 위해 희생한 팔당특별대책지역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보상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처럼 특별규제를 받는 지역은 1등급 하향조정하는 방안도 건의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