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일 베트남전 관련 잔여 외교문서를 모두 공개함으로써 그 동안 베트남 파병을 둘러싸고 베일에 가려져 있거나 세간에 나돌았던 각종 의혹들이 해소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정부는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는 원칙에 따라 베트남전 종전 30주년을 맞는 올해 두 차례에 걸쳐 관련 문서를 모두 공개함으로써 사상 첫 해외 참전인우리나라의 베트남전 파병은 역사의 뒤안길에 자리잡게 됐다.

 국방부가 이번에 공개한 관련 문서는 총 17권의 문서철 1천700여쪽에 달하는 분량으로, 지난 8월 외교통상부에서 공개한 7천400여쪽에 달하는 베트남전 관련 외교문서와 내용상 상당부분 동일하며, 새롭게 공개된 분량은 400여쪽에 이른다.
 눈에 띄는 대목은 동서진영간 극도의 대립구도를 보였던 당시 우리 정부가 북한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공산권 저지를 위해 외교총력전을 펼쳤다는 사실이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1960년대말 한국, 일본, 대만을 아우르는 '지역방위기구'결성을 검토하면서 미국과 적극적인 교섭을 벌일 필요성을 직접 제기했다.
 이는 베트남전의 장기화로 주한미군 2개사단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대두되고 우리 국군도 대거 파병됨에 따른 안보공백을 극도로 우려한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우리 정부는 파병국 외무장관회의에서도 1.21사태나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등을 집중 제기하며 북한의 재도발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번 문서공개로 드러난 우리나라의 NPT(핵무기비확산조약) 가입에 대한 고민도당시의 안보 우려가 얼마나 심각했었는 지 가늠하게 해준다.
 당시 NPT 미가입국인 중국의 핵무기 공격에 대한 우려와 함께 우리가 NPT에 가입할 경우 대응체계로서의 자체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원천차단 당한다는 불안감이깔려 있었던 것이다.
 베트남 파병과 관련해서도 우리 정부가 나름대로 실리를 챙기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점도 문서 곳곳에 배어있다.

 파병 한국군과 군속이 비전투 중에 사상사고를 당했을 경우 조사를 비롯한 관할권은 우리가 갖되 그 보상은 미군이 책임지도록 관철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 군에 대한 미국 정부의 해외근무수당 지급 문제도 당초 미측이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관철시켰고, 이는 필리핀, 태국 등 다른 파병국 수당의 기초자료가 되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또 해외근무수당과는 별도의 전투수당 지급 문제도 미측에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미측의 반대로 무산돼 당시 우리 정부가 좀 더 적극성을 띠었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당시 우리 파병국군이 미측으로부터 지급받은 해외근무수당의 82.8%에 달하는 1억9천511만달러가 국내로 순수 유입된 점도 결과적으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기에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비록 베트남전 관련 핵심 외교문서인 브라운각서 및 사이밍턴 청문회 등과 관련된 문서는 올 8월 이미 공개되기는 했지만, 이번에 잔여 문서가 추가 공개되면서 베트남전에 대한 상당수의 의혹 해소와 각종 학술연구에도 기여하게 될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