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락가락하던 현대건설의 개발계획이 또다시 10년후로 연기된 김포시 고촌면 향산리 한 주택에서 산산이 조각난 유리창이 개발광풍에 멍든 원주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하다. /임열수기자·pplys@kyeongin.com
정으로 얽혀 수백년을 이어 내려오던 촌락공동체가 거센 개발 바람에 밀려 해체되고 있다. 형제처럼 지내던 마을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개발열기에 들떠있던 20여년의 세월동안 김포에서만 40여개가 넘는 '정(情)의 공동체'가 그렇게 사라졌고, 5천여명이 넘는 원주민들이 고향을 등졌다.

2008년에 3천400여세대의 아파트를 분양하겠다던 현대건설의 개발 계획이 10년후로 연기된 김포시 고촌면 향산리의 10월은 적막했다. 한때 220세대가 넘게 살던 마을엔 40여가구만 남아 있다.

이씨와 기씨의 집성촌으로 수백년을 내려오면서 마을사람 대부분이 일가친척이던 향산리에 개발 바람이 불어닥친건 1994년. 그때부터 13년의 세월동안 보상 가격을 두고 현대건설과의 밀고 당기기가 계속되면서 주민 상당수는 돈을 받고 고향을 떠났다. 남은 사람들이라고는 큰 집에서 분가하면서 토지 명의는 그대로 둔채 집만 지어 평생을 내 것으로 알고 살던 주민들 뿐이다.

세입자는 분명 아닌데 개발바람에 밀려 졸지에 세입자가 돼버린 주민들은 "시내로 나가 전세 얻을 돈은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현대측과 실랑이를 거듭했지만 개발이 연기되면서 협의는 끊겼다.

평생을 향산리에서 살았다는 이모(68)씨는 "김포의 집값이 그동안 얼마나 올랐느냐. 회사에서 제시하는 4천만~6천만원 갖고는 3대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할 수가 없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개발이 10년 연기됐다고 그냥 눌러 살기도 어렵다. 빈집들엔 붉은 페인트로 흉물스런 X자가 그어졌고 철거의 잔해가 곳곳에 널려 있어 분위기가 너무 삭막해졌기 때문이다.

3천억원이 넘는 돈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진 현대측도 답답하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업을 추진해 왔는데 또다시 10년 뒤로 연기되고 보니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할지 방향을 잡기가 어려운 처지다.

현대측은 빈집과 건물 철거는 계속하겠지만 남아있는 주민들과의 추가 협의는 어렵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주민 사정도 이해는 하지만 막대한 금융 비용은 어떡하냐, 답답하다"며 한숨을 지었다.

민초들의 삶을 허물지 않고 개발할 수 있는 방식은 없는 것인지, 개발 광풍에 이미 가족과 공동체를 잃은 향산리는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