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활동한 안기부 비밀도청 조직 미림팀은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공작을 펼치며 대화를 엿들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YS 때 재건된 2차 미림팀은 1994년 6월부터 3년5개월동안 호텔, 한정식집, 식당, 골프장 등으로 1천여 차례 '출장 도청'을 나가 무차별적으로 도청 정보를 수집했다.

또 검찰이 미림팀장 공운영씨 집에서 찾아낸 300매 분량의 '주요인물 접촉 동향'보고서는 1994년 6월부터 유명 한정식집 지배인, 여주인 등 이른바 속칭 '망원'들로부터 넘겨받은 중요 인사들의 오찬, 만찬 참석자 명단과 특이 사항을 적은메모지를 정리한 자료로 녹취보고서에 첨부됐다.
안기부가 겉으로는 정보수집의 과학화를 내세워 실제론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한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난 셈이다.

◇'정보수집 과학화'가 도청이라니=미림팀은 이미 1960년대 중반 당시 중앙정보부가 정치인 등 주요 인사들의 동향을 파악하려고 국내정보수집 담당부서산하에 운영하던 정보수집팀의 별칭이었다.
주로 고급 술집 여주인(마담)을 '망원'으로 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후 노태우 정부 말기인 1991년 9월 서동권 안기부장이 회의에서 '정보 질이 낮다'고 지적한 뒤 태모 4국장 등 국장들이 모여 정보수집 과학화를 명분으로 4국산하에 있던 기존 미림팀을 재편하면서 도청이 본격화됐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팀원들은 남산 안기부 별관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시내 P호텔 객실 1개를 안가로 확보한 뒤 정보학교 통신교관으로부터 1개월동안 현장 실습을 받으며 도청장비사용법을 익혔다. 장비는 'CN-400'이라는 송·수신기 5세트와 미국산 송·수신기 2세트, 소형 녹음기 10대, 중형 녹음기 1대가 사용됐다. 송신기는 가로 3~4cm, 세로 6~7cm, 두께 1.5cm로 호주머니에 충분히 들어가는 크기였다.
팀원들은 처음에는 손님인 것처럼 호텔, 한정식집을 드나들며 '망원'에게 접근해 금전, 소송 문제 등을 해결해주고 친분을 쌓아 도청에 활용했고 '망원'에게는 따로 보안각서까지 받았다.

'망원'은 10~25명 정도였고, 이들에게는 도청 실적에 따라 1인당 20만~70만원의 활동비도 건네졌다.
1차 미림팀은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사고'가 터질 수 도 있다고 판단한 4국장이 미림팀 활동 중단을 지시하면서 해체됐다. 본격적인 도청이 이뤄진 2차 미림팀은 1994년 2월 재건됐다.

◇골프장에서도 도청…현철씨에게 '직보'=미림팀은 정치인, 언론인, 청와대수석, 국무총리, 보안사령관, 각군 참모총장, 대통령 아들, 법조계 인사를 주요 도청 대상자로 골랐다.
1997년 대선 직전에는 여당 내부 인사들이나 당시 야당 대통령 후보 측근들이 표적이 됐다. 이들은 식탁 아래 뿐 아니라 음식점 내 식기 장식장, 에어컨 내부, 가구 서랍, 소파 밑에 양면테이프로 2시간 전에 송신기를 설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는 서울 근교 골프장에서는 골프 가방 안에 송신기를 넣어 도청하는 등 상상을 초월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수사 결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는 김기섭 안기부 운영차장으로부터 보고서를 받은 정황이 드러났고, 이원종 정무수석도 오정소 차장으로부터 미림팀보고서와 안기부 문건을 보고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