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군 협의'.
경기도는 연천군에 소방서를 신설하기 위해 연천읍 차탄리에 3천100여 ㎡의 부지를 확보한 뒤 지난 2005년 12월 3일 관할 군 부대에 협의를 요청했다. 현 군사시설보호법은 군사시설보호구역에서 건축 등 개발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군 협의가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는 지자체도 예외가 아니다.

군은 50일 만인 이듬해 1월 23일 '부동의'를 통보했다. 이유는 '신청지에 건물을 세우면 관측과 사계(射界)에 제한이 돼 군사작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었다. 도는 할 수 없이 전곡읍에 다시 부지를 마련했고, 현재 터파기 공사를 하고 있지만 당초 목표였던 연내 개서는 이미 물 건너갔다.

함께 신설이 추진됐던 화성과 가평소방서는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어도 연천은 내년에도 동두천소방서에 의지해야 할 상황이다.

군사보호시설구역 안에서는 행정기관의 허가를 받더라도 군 협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화장실이나 축사 하나도 지을 수 없다.

행정기관의 허가는 요건만 갖추면 되기에 오히려 쉬운 절차다. 만약 군이 '부동의'를 통보한다면 그 건은 그걸로 끝난 셈이다.

문제는 군 협의가 수시로 법이 정한 기한을 넘겨 주민 피해를 유발하고 그 과정이 매우 일방적이라는 데 있다.

18일 도에 따르면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군 협의를 거친 민원 1만7천540건 중 '부동의' 된 것은 전체의 27%인 4천785건에 달한다. <표>

군사적인 장애요소 해소를 위한 대책 수립 및 이행을 전제로 한 '조건부 동의'도 3천251건(18.5%)이나 된다.

협의에 대한 회신이 30일 이내에 온 것은 1만7천540건 중 절반 정도인 8천546건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절반은 회신까지 30일이 넘게 걸렸고, 무려 90일 이상 걸린 것도 405건이나 된다. 군사시설보호법 시행규칙에는 관할 군 부대의 협의기간을 최장 25일로 정하고 있다.

 
 
  ▲ 최강의 공격용 헬기라는 '아파치'의 훈련 장면은 경기북부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낯선 풍경이 아니다. 주민들은 '군 작전에 지장이 있다'는 한 마디의 위력을 수십년간 실감하고 있다.  /최재훈기자·cjh@kyeongin.com  
 
이런 배경에는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해제 및 군협의를 처리하는 관할 부대의 보호구역심의위원회가 있다.

위원장을 포함해 5∼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이 위원회는 부지휘관이나 참모장이 위원장을 맡고, 위원들 역시 참모나 직할부대장, 군법무관 등 전원 군 관련 인사로 채워진다. 지방공무원이나 지역전문가, 주민 등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배제, 지자체 입장이나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통로조차 꽉 막혀 있다. 반면, 국방부의 보호구역심의위원회에는 정부 각 부처나 지자체 공무원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공공시설 설치도 군의 눈치를 봐야 하는 판인데 하물며 주민들은 말할 것도 없다"며 "군이 부동의하면 각종 인·허가 민원을 반려할 수 밖에 없지만 재협의를 요청하는 규정이 없어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하기 직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