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침체에 대선 정국까지 맞물리면서 세밑 어려운 이웃들을 향한 온정의 손길이 움츠러들고 있는 가운데 13일 저녁 안양시내에서 한 노인이 파지를 손수레에 싣고 고물상으로 향하고 있다. /임열수기자·pplys@kyeongin.com
영하 4도의 쌀쌀한 날씨를 보인 13일 오전 8시50분 안양 만안초등학교 정문 인근 M슈퍼 앞 도로. 아주 왜소한 체구의 한 할머니가 종이 상자 몇개를 손수레에 싣고 있었다. 두터운 점퍼를 입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추워 보였다.

"올해 나이가 80살"이라고 밝힌 이 할머니는 "오전 7시30분께 집을 나와 동네를 돌고 있지만 날씨 탓인지 종이 상자가 눈에 잘 띄지 않아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시선은 내내 골목 이곳 저곳을 살피는 눈치였다. 할머니는 "이런 저런 일을 해 봤지만 여의치 않아 10년 넘게 파지와 고물을 주워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식들은 없냐고 묻자 "자식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들 제밥벌이조차 힘든 형편이라 손을 내밀 처지가 아니다"고 했다. 할머니는 "아침, 저녁 하루 두번씩 동네 주변을 돌며 폐 종이상자와 헌옷, 고물 등을 줍지만 같은 일을 하는 노인들이 많아 생각만큼 '차지'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파지값이 1㎏에 100원 정도에 불과해 손수레를 가득 채워도 손에 쥘 수 있는 건 2천~3천원 내지 3천~4천원에 불과하다"며 할머니는 "이웃들이 조금씩 도와줘서 살지 그나마 도움이 없었으면 벌써 어떻게 됐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인근의 또 다른 골목길에서 만난 김철수(76·가명) 할아버지는 조금 큰 손수레에 폐컴퓨터와 파지를 싣고 고물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시집간 딸이 기름 보일러를 놓아 줬지만 워낙 비싸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보낸다"고 했다.

"파지 등을 주워 전기세에 보태고 있지만 '운수 좋은 날'이 많지 않아 여간 힘겨운 게 아니다"고 했다. 그나마 최근에는 ㎏ 당 20~30원 정도 올라 나은 편이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딸 다섯을 모두 출가 시키고, 운동 삼아 파지를 모으고 있다"고 하면서도 자식 얘기를 꺼내자 눈물을 훔치며 손사래를 쳤다.

혼자 겨울을 나는 6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은 안양시만 해도 7천330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중 1천270명은 생계비 지원을 받고 있지만 나머지 상당수 노인들은 할머니와 김 할아버지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사회복지사 김모(43)씨는 "파지를 줍는 노인들이 많이 늘어 경쟁이 치열하다"며 "생활지도사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독거 노인들을 방문하는 등 보살피고 있으나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