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장관이 밝힌 뒷얘기
입력 2000-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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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문화부 장관은 지난달 15일 김대중대통령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특사에 임명된 후 같은 달 17일부터 4월 8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중국을 방문해 북측과 협상을 벌였다.
집 전화번호를 바꾸고 탑승 명단에 오른 이름을 속인채 중국을 드나들었던 첩보영화의 한 장면같은 박지원 장관의 협상 뒷얘기를 박장관의 증언을 중심으로 재종합,구성해본다.
◇3월 14일: 북한은 판문점을 통해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만나자는 남북한 특사급 접촉을 갖자는 연락을 해 왔다.
◇3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은 박지원 장관에게 관저로 들어올 것을 지시하고 박장관이 이번에 남한의 특사로 중국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와 비밀접촉을 갖는게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박장관은 주무 부처인 통일부에서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뜻을 밝혔지만 김 대통령은 통일부에서 특사접촉에 나갈 경우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며 박 장관을 특사로 임명했다.
◇3월 17일: 박장관은 오전 9시20분 아시아나 항공 1등석에 몸을 싣고 상하이로 향했다.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집 전화번호를 바꾸고 문화관광부 직원들에게는 몸이 좋지 않아 검진을 위해 병원에 입원해야겠다고 둘러댔다.
비행기 예약은 수행비서를 통해 'Park Jei won'으로 해 '박제원'으로 읽히도록 했고 비행기에 탑승하는 당일 날도 귀빈실 주차장에서 내려 일반 출구를 통해 탑승했다. 법무부 직원과 일반승객들이 박장관을 알아봤지만 '개인업무로 출국하는 것이니 신경쓰지 말라'며 자신을 낮췄다.
다행히도 비행기 예약이 1등석으로 돼 있어 제일 먼저 타고 제일 먼저 내릴 수 있었고 화장실도 다른 승객들이 눈을 감고 있을 때 이용하는 치밀한 작전을 펼쳤다. 호텔에서는 외출을 절대로 하지 않고 식사는 룸서비스로 해결했다.
북측 송 부위원장과는 17일 도착 당일 처음으로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박장관은 "나는 이 자리에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로 나왔다. 나는 남북관계 전문가가 아니고 단지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 평화와 인도주의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송 부위원장은 "나도 전문가가 아니다. 상부의 뜻을 받고 특사로 나왔을 뿐이다.
50년을 넘는 분단의 상황에서 사변적인 일을 완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화답했다. '사변'이라는 표현에 박장관은 놀랐지만 송 부위원장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이날 오후 4시와 10시 30분 박장관과 송부위원장은 두 차례에 걸려 회담을 가졌지만 일단 남북한의 원칙적인 입장을 밝히는 선에서 회담을 마무리했다.
◇3월 18일: 박장관과 두 명의 대표로 이뤄진 남측 대표단은 호텔에서 룸서비스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전 10시부터 세번째 회담에 들어갔다. 북한은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건설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며 협의에 나섰다. 하지만 정상회담 개최라는 대전제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합의문안 작업은 쉽지 않았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름과 직함을 넣을 수 없다며 버텼다. 오후 5시 협상을 재개했지만 뚜렷한 진전 없이 30분만에 끝났다.
송 부위원장은 정부 훈령을 가지고 19일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박장관은 19일 비행기로 귀국했다.
◇3월 22일: 박장관 일행은 차이나 항공편으로 다시 베이징에 날아갔다. 오후 5시 회담이 예정돼 있었지만 북측은 여전히 우리측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버텼고 회담은 결국 열리지 못했다.
박장관은 송 부위원장과 밤새 전화통화를 하면서 줄다리기를 거듭했다. 새벽 3시 송부위원장은 "이튿날 새벽 5시 만나자"고 제의해 전격적으로 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또 다른 암초가 등장했다. 북측은 '김대통령의 요청에 따른'으로, 남측은 '김위원장의 초청에 따른'으로 맞섰다.
박장관은 여기서 물러설 수 없는 일이라며 '서울 귀환'이라는 초강수를 띄웠다.
이때 송부위원장은 "남측도 정상회담이 총선에 필요한 것 아니냐"며 흘렸다. 이에 발끈한 박장관은 "우리는 민족문제를 정치에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제안을 받으려면 연락하고 그렇지 않으면 연락하지 말라"고 밝힌 후 오전 9시 베이징을 떠났다.
◇4월 7일: 북한은 비공개 채널을 이용해 "남측의 요구를 수용할테니 8일 베이징에서 다시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4월 8일: 박장관은 이날 오전 9시 40분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해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이번 출장에는 한식을 이용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한식 때 성묘를 못해 선산을 다녀오겠다"고 말한 후 핸드폰도 아예 꺼버렸다. 이번에는 차이나 월드 호텔에 묶었고 북한도 처음으로 같은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오후 4시 남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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