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재 (지역사회부장)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 이후 첫 방문지로 전경련을 택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전경련을 방문해 재계 총수들과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대선 이후 가장 먼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새 정부가 기업인들이 마음놓고 기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내내 마치 대역죄인처럼 납작 엎드려 있었던 재벌 총수들에게는 이 말이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프렌들리 비즈니스', 즉 친기업적 정책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온갖 도덕성 논란과 자격시비를 잠재우고 이명박 당선인이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반노무현 정서가 강했던 것도 원인이지만 '경제를 알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붕괴 직전까지 도달한 서민경제와 과도한 세부담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중산층 유권자에게 경제부흥을 부르짖는 이 당선인의 출현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명박 후보 그는 경제를 압니다'라는 선거 카피는 유권자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고 '일단 바꿔보자'에 한 표를 던지는 원동력이 됐다. 경제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 그를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한 것이다.

하지만 경제를 안다는 것이 그에게는 집권 내내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7%의 경제성장을 내세운 그의 선거 공약은 이미 6%로 낮춰졌다. 올해 들어 외국인들의 융단폭격에 가까운 매도공세로 주가는 폭락했다. 1인 1가구 펀드시대에서 주가 폭락은 가정경제에 또 다른 고통이 하나 더 추가됐음을 의미한다. 미국 경제의 하락에서 시작된 전 세계 경제의 위축은 아직 취임도 하지 않은 이명박 당선인에게 짐 하나가 얹혀진 것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예상 외로 심각해 올 연말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발표는 우리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가 연말까지는 신통치 않을 것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세계 경제가 무너진다면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에게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극복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두 이명박 당선인의 짐이다.

'기대심리'라는 것이 있다. 지금 찬반논란이 과열되고 있는 대운하에 대한 기대심리는 남한강 줄기를 따라 땅값을 폭등시키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꼭 5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행정수도 예정지 주변 땅값이 폭등했던 상황과 너무 유사하다. 대운하처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은 노무현 정부의 최대 핵심사업이었다. 그러나 지금 어떤가. 행정도시는 그 지역만의 관심사일 뿐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앞서는 우리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경제우위를 강조하는 이명박 당선인의 논리가 과연 정치논리를 이겨낼지 걱정스러운 것도 그런 이유다.

이명박 경제의 요지는 기업규제 완화와 서민생활 안정이다. 그러나 서민경제를 위해 인수위가 내놓은 휴대전화요금 인하방안은 이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업과 해당부처에 강압적으로 휴대전화요금 인하를 강요하는 것은 기업규제 완화에 오히려 배치되는 꼴이다. 자율적인 시장논리 숭배자인 이명박 당선인의 경제논리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뿐인가. 부동산 안정대책도 규제완화와 시장안정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부채탕감과 연체기록 삭제를 서민생활 안정이라고 내놓았다가 철회했다. 당선되면 내리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유류세도 쑥 들어갔다.

지난 토요일 부시 미국 대통령은 1천450억달러라는 대대적인 감세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뒤늦은 처방이어서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감세정책을 준비했던 이명박 당선인은 신통치 않은 부시의 감세정책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문제는 이명박호는 아직 출항도 하지 않았는데 이명박 당선인의 경제살리기 공약에 한 표를 던졌던 수많은 유권자들의 실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는 것이다. '도대체 뭐냐'는 것이다. 기대심리가 너무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섣부른 실망은 금물이다. 이제 닻을 올리려는 이명박호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암초를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고 기나긴 여정을 마무리할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