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 어정가구단지 일대의 택지개발을 앞두고 한달이 넘도록 망루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세입자들이 설을 이틀 앞둔 5일 망루속 사무실에 모여앉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임열수기자·pplys@kyeongin.com
"살길이 막막한데 설 명절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연휴기간이지만 언제라도 급작스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긴장하고 대비해야죠."

5일 오전, 20년 전통을 뒤로 한채 대규모 아파트 개발사업을 코앞에 두고 있는 용인 어정가구단지. 설이 다가왔지만 서너달 전부터 문을 닫기 시작한 상가 골목골목에는 깨진 유리창과 간판, 폐가구들이 널브러져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황량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여기에 그동안 상가 등을 임차해 운영하던 일부 세입자들이 토지주 및 개발업체 등과의 마찰로 상가건물 옥상에 망루를 설치한채 48일째 경찰과 대치를 계속, 팽팽한 긴장감이 명절 분위기를 대신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18일 이곳 가구단지가 아파트 건설을 위한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된 뒤 바로 다음날 '어정 상가공장 세입자 철거민 대책위원회'에 의해 설치된 망루에는 현재 23명의 세입자들이 '결사 항전'을 외치며 투쟁을 벌이고 있다. 세입자들의 의지를 말해주듯 14 높이의 망루가 설치된 3층 옥상에는 유리병과 새총, 총알로 사용되는 골프공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토지주, 사업시행자 등과의 마찰 과정에서 수차례 무력 충돌까지 빚어진터라 주변 역시 '살풍경'이긴 마찬가지였다. 가족들이 틈틈이 실어다 주는 라면과 부식거리로 끼니를 때우고, 나무 땔감을 사용하는 난로 주변에 모여 번갈아 '칼잠'을 자 온지도 벌써 두달이 다가오고 있다. 귀성은 커녕 설 분위기조차 떠올릴 수 없다는 얘기다.

대책위 관계자는 "고단하고 서럽지만, 어차피 일부 세입자들은 경찰에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라 망루에서 내려갈 수도 없다"며 "생존권 보장을 위해 설은 포기한지 오래"라고 말했다.

설을 잊기는 세입자들과 대치중인 경찰도 마찬가지다. 아직 양측이 전면 충돌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지난 2005년 오산 세교지구에서의 불상사 이후 도내 유일의 '망루 투쟁'인데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인지라 한시도 경계를 늦출 수가 없는 상태다. 설 연휴기간 역시 교대로 24시간 대치상황을 파악해야 해, 현장에 배치된 경찰관은 물론 다른 직원들과 전·의경들 역시 긴장감 속에 설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용인경찰서 관계자는 "명절 연휴내내 교대로 24시간 대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며 "서로 조금씩 양보해 설 전에 대치 상황이 끝나 따뜻한 명절을 보냈으면 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이 곳외에 현재 도내에는 수원 화서주공, 의왕 부곡동 등 모두 5곳에서 세입자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투쟁하는 자와 이에 대비하는 자 모두에게 이번 설은 춥고 쓸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