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생지옥 같이 참혹했던 소련과 독일간의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생각난다. 그 까닭은 간단하다. 요즘의 양육강식의 세계 경제전쟁을 보면서 이 전투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너무 많아서이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2년 여름부터 1943년 2월까지 소련 연방 스탈린그라드에서 벌어진 독·소간의 혈투이다.
히틀러의 충복 파울루스를 선두로 한 33만명의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기 위하여 기갑부대를 동원, 총 공격을 감행했으나 소련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힌데다 추위와 보급품 부족으로 괴멸당하고 만다. 고작 독일군 생존자는 부상자를 포함 9만여명. 하지만 이들을 기다린 것은 사할린 포로수용소의 호된 추위와 고된 노동, 굶주림이었다. 결국 본국으로 송환된 자는 이중 5천여명 가량이었다고 하니 승자와 패자의 운명이 어떠한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핵심은 이 전쟁이야기가 아니라 독일이 왜 이런 전쟁을 치러야 했는가 하는 점이다. 볼가강 하류에 위치한 스탈린그라드는 주요 산업의 중심지이자 캅차스 지방의 유전과 소련의 여러 곳을 잇는 석유 공급로여서 독일이 꼭 점령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로서는 소련내의 무궁무진한 자원과 석유 확보를 위한 중동진출의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선 소련 정부의 붕괴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 이런 전쟁을 치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지금 우리도 총성없는 자원확보 등 무한의 경제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난파선처럼 표류 신세이다. 하루가 다르게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데다 세계 금융시장의 경색으로 인해 불안심리가 증폭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선지는 이미 오래됐다. 세계 곡물가격의 폭등은 애그인플레이션을 촉발하면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등 우리의 목을 옥죄고 있다.
고물가·저성장 속에서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늘어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국민들의 씀씀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해외여행객의 수요급증으로 인한 해외소비가 눈덩이 처럼 불어나고 있어 이런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생산과 소비가 위축되자 가뜩이나 어려운 취업시장은 한겨울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물가오름세가 예사롭지 않다. 월급 말고는 오르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여서 서민 생활은 갈수록 궁핍해지고 있는 실상이다. 당연히 '못살겠다'는 아우성이 가득하다.
이것들 말고도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그렇다치더라도 우리 고장 경기도를 보면 답답함을 금치못한다. 도내에 산재한 삼성전자 등의 협력업체들은 거의 아사직전이라고 한다. 특검의 여파가 계속되면서 수천개의 1·2·3차 영세협력업체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해 외환위기 이후 최고의 위기감에 싸여 있다. 투자는 커녕, 언제 납품이 끊어질지 몰라 전전긍긍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곳도 없다. 충청도의 경우만해도 아산 탕정지구 LCD단지의 협력업체들이 큰 어려움을 겪자 광역지자체를 중심으로 지역사회가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발벗고 나섰다고 하는데 여기엔 그런 것이 없다. 우리에게는 경기도가 소련의 스탈린그라드만큼 중요한 산업의 중심지인데도 말이다. 정부는 물론이고 해당 지자체인 경기도가 모른척한다면 이젠 지역사회라도 나서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계절의 봄은 왔지만 마음속의 봄은 멀어보인다. 곳곳이 언제 터질지 모를 지뢰밭이며 혹한의 겨울이 지속되고 있다. 빠른 시일내에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길 진정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