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산과 들, 바다를 찾는 시즌이다. 일터와 가정 등지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는 어느 순간 잊혀진다.
그런데 18대 총선이 그런 기분을 망가뜨리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통의 메일이 휴대전화와 인터넷으로 들어오는데 기분 좋은 소식은 거의 없다. 어느 후보가 선거공보물에 허위 사실을 적었다느니, 어느 후보가 금품을 돌리다가 적발됐다느니. 상대방의 약점을 부각시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네거티브 선거운동이 판을 치고 있다.
여·야가 공천 과정에서 큰 진통을 겪으며 "이번에는 꼭 다른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유권자들에게 약속을 했지만 실제 선거판은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후보들은 왜 이렇게 선거판을 몰고 가는걸까. 공명정대하고 정책선거가 되도록 하면 안되는가?
여·야가 모두 읍참마속 (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최상의 카드를 선택했다고 하지만 '잘했다'는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치숙청이 아니냐는 인식으로 반발심을 키워 무소속을 양산했다는 지적이다.
선거 등록일이 임박해 부랴부랴 후보를 결정하는 바람에 후보들이 정책 연구를 할 틈도 주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급조된 공약이 남발됐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로드맵에 따라 추진되고 있는 사항을 공약으로 내걸어 "국회의원이 되면 지원하겠다"는 얄팍한 '편승공약'이 주를 이뤘다.
각 후보 진영의 선거전략도 너무 치졸한 게 많다. 심지어 수십년전의 일까지 들춰내며 도덕성을 꼬집는 일까지 발생했다.
분명 후보검증 차원에서 짚어야 할 것은 짚어야 하지만 그런 해묵은 일을 들먹이는 것을 지켜보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선거기간 동안 인천에선 선거공보물 표절 시비를 비롯, 학력 시비, 안상수 시장 관권 개입 논란, 향응 및 금품 제공 의혹, 공보물을 둘러싼 허위 사실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공방이 펼쳐졌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후보자를 폄하하기 위해 타블로이드판으로 유인물을 만들어 주택가 등지에 뿌리는 소동이 빚어져 선관위에 고발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이런 현상들은 자체 및 언론기관 등의 여론조사 결과 오차 범위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지역일수록 두드러졌다.
아무리 생존게임이라지만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헐뜯고, 물고물리는 적자생존의 밀림속 같다.
길거리 유세현장에서 상대 후보가 난도질당하는 걸 보고 외면하듯 지나가던 한 유권자의 말이 떠오른다. "참나, 지는 얼마나 잘나서."
여·야는 이번 선거의 최대 변수는 부동표라고 분석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유권자들이 누구에게, 어느 당에게 표를 줘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는 것도 현실이다.
선관위, 여론기관, 언론기관, 각 정당 등이 조사한 결과로도 부동층의 향배에 따라 당락이 결정될 수 있는 접전지역이 많다.
선관위는 특히 투표율이 역대 선거보다 낮을 것으로 예측된다며 투표율 높이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런데 정작 유권자들의 마음은 굳게 닫혀 있다. 아예 쳐다보려고도 않는다.
공천 과정, 선거 공약, 선거 전략 등 어느 것 하나 유권자 위주로 짜여진 게 별로 없는데도 후보자들은 유권자의 마음을 사려고 안달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유권자들도 문제는 있다. 4월 9일은 투표하는 날이다. 투표를 하라고 일터에서 시간을 줬을 뿐이다. 그런데 많은 유권자들이 휴일로 착각해 나들이 계획을 짜놓았다.
정치 불신, 인물 부재 등 여러가지 이유를 대지만 핑계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선거때가 되면 '이번에 일꾼을 제대로 뽑아야겠다'는 즐거운 마음이 들도록 정치 풍토가 바뀌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