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 앞바다에서 갑작스런 바닷물 범람으로 어린이날이 낀 연휴를 맞아 가족나들이에 나섰거나 방파제.갓바위 등에서 낚시를 즐기던 수십명의 관광객들이 숨지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바닷가에서 여느 때와 같이 한가로이 휴일을 즐기던 관광객들은 별다른 징후없이 밀어닥친 집채만한 큰 파도에 휩쓸리면서 변을 당했다.

   이날 이 지역 해상에는 강한 바람에 높은 파고가 예상된다는 기상예보는 있었으나 해일주의보 등은 발령되지 않았다.

   태안해경과 보령시 등은 현장에 임시 사고 합동대책본부를 설치하고 경비정 및 순찰정, 민간 구조선 30여척과 잠수부 등을 동원해 인근 바다에서 실종자들에 대한 추가 수색작업을 벌이는 한편 일행과 목격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 중이다.

   ◇사고 발생 = 4일 낮 12시41분께 보령시 남포면 죽도내 선착장, 방파제와 500여m 떨어진 인근 갓바위에서 낚시객과 관광객 등 수십명이 갑작스럽게 범람한 바닷물에 휩쓸리면서 가족 나들이에 나섰던 박종호(36.연기군 금남면).성우(4) 부자 등 9명이 숨졌다.

   또 이덕진(30)씨 등 14명이 인근에 있던 어선, 119구조대, 해경 경비정 등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됐으나 크게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중 일부는 위독해 사망자수는 더 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망자 9명은 보령 아산병원 등에 안치됐다.

   해경은 당시 사고현장에 관광객들이 많았다는 목격자들의 말에 따라 이들 외에도 실종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상.실종자수에 대해서는 각 기관간 다른 집계가 나오는 등 실제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사고자 가운데는 특히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앞두고 바닷가 나들이에 나서거나 함께 낚시를 즐기던 가족단위가 많아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이날 사고로 박씨 부자를 비롯, 최성길(63.연기군 조치원읍)씨와 처남 이육재(45)씨, 추창렬(45.경기도 안산시)씨와 조카 추승빈(7)군, 박선규(48.경기 수원시)씨와 조카 박주혁(15)군 등이 숨지는 등 가족관계의 나들이객들이 잇따라 변을 당했다.

   ◇사고 순간 = 목격자들은 이날 "바닷물이 썰물처럼 한꺼번에 빠졌다가 10m 높이의 큰 파도가 일시에 밀려들면서 선착장과 갓바위에 있던 낚시객과 휴일 나이들객들이 휩쓸려 바다에 빠졌다"고 사고 순간을 전했다.

   사고현장에 있던 김혜곤(31.천안시 목천읍)씨는 "미처 피할 틈도 없었다"면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고 말했다.

   선착장 인근에서 횟집을 하고 있는 고명래(67)씨는 "느닷없이 천둥과 벼락치는 소리가 나더니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며 "밖으로 나가 보니 아이들이 '우리 엄마 죽었다'며 울고 있었다"고 말했다.

   고씨는 "바다를 쳐다보니 사람들이 둥둥 떠 있었다"면서 "20년동안 이 자리에서 장사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고 말했다.

   주민 김기덕(45)씨도 "잔잔한 바다에서 갑자기 파도가 일더니 낚시꾼들과 관광객들을 삼켜버렸다"며 "파도는 딱 한번 쳤고 사람들이 물에 휩쓸리며 아비규환이 일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0분정도 지나자 평상시처럼 파도가 잔잔해졌다"며 "내가 볼 때 그것은 파도가 아니라 거대한 해일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해일주의보는 내려지지 않았다.

   대전지방기상청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폭풍 해일이나 지진 해일에 의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만조 때 해안을 따라 흐르던 강한 조류가 인공적으로 구축된 방파제에 부딪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명피해 왜 컸나 = 바닷물 범람으로 큰 인명 사고가 난 죽도는 서해안 최대 해수욕장인 대천해수욕장과 인접한 곳으로 평소에도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었지만 높은 파도 등에 대비한 대피시설이나 구명장구도 갖춰져 있지 않아 화를 키웠다.

   최근 무더웠던 날씨와 어린이날 연휴를 맞아 대천해수욕장과 죽도 인근에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평소보다 많이 찾았던 것도 큰 인명 피해를 불렀다.

   이날 보령 앞바다에 평소보다 높은 파도가 예상된다는 기상 예보는 있었으나 해일주의보 등 특보가 발령되지 않은 상태였다.

   통상 해일주의보는 바닷물의 높이가 8.44m, 해일경보는 8.64m이상일 때 각각 발표되는 데 이날 사고 당시 보령 앞바다의 바닷물 높이는 최고 5.75m로 특보를 내릴 상황은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파고 역시 0.1-0.2m로 잔잔했었던 데다 바람도 초속 0.5-4m로 세지 않았다.

   보령시청 한 관계자는 "죽도는 썰물에도 물이 빠지지 않아 평소에도 낚시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이번 처럼 갑작스럽게 큰 파도가 인 것은 처음 본다"며 "죽도에 경찰, 해경 과 함께 정확한 사고 원인 조사와 함께 수습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색작업 = 태안해경은 경비정 26척과 해군함정 2척, 순찰정 3척, 민간 구조선 7척 등과 112 구조대원, 특공대원, 잠수부 등을 동원해 죽도 인근 반경 2-3㎞ 지역에서 실종자들에 대한 집중 수색을 벌이고 있다.

   또 선착장 인근에 주차된 차량 89대의 차적을 조회, 이중 59대의 차량 소유주의 신원을 확인했으며 나머지 30대의 소유주 및 탑승자 등을 조회해 실종자 수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는 한편 일행과 목격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 중이다.

   충남도 소방안전본부와 보령시 등도 보령시 남포면 죽도리 현장에 임시 사고 합동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인명구조 및 유가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령시는 사망자와 부상자가 후송된 시내 병원에 직원들을 배치하고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가족과 보호자를 안내하는 등 비상근무 체제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