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지인(知人)이 한참의 대화끝에 어색한 첨언을 했다. 대화의 시작은 작금의 어수선한 사회문제였지만, 표적이 옮겨가면서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진 터였다. 딱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던 차에, 상대가 마음 상한 것으로 여겼는지 잔뜩 미안한 표정과 함께 한 말이었다. 서로 공감하며 나눈 대화였는데, '그냥 충심에서 한 말'이라는 사족이 왠지 걸렸다. 사전을 뒤적여보니 그가 말한 충심은 충심(衷心)이다.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참된 마음. 그런 마음으로 한 말이라는데 기분 나쁠 이유가 있으랴만, 사전적 의미에 보태 '상대방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이려니 결론 짓고 나서야 비로소 위안을 얻었다. 잠깐의 소심이 부끄러웠던 건 물론이다.
충심(忠心)은 어떨까. 말그대로 충성스러운 마음이다. 충성의 상대는 보통 국가이고, 과거 왕권시대에는 왕 개인이기도 했다. 왕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충심의 기본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절대복종이 전제가 됐다. 충성을 받는 왕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쓴소리, 입바른 소리도 한두번이라고, 결국에는 자신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신하야말로 충신으로 여겼을게다. 역사도 그렇게 평가한다. 무기력한 고려왕조를 저버리지 않은 정몽주, 쫓겨난 어린 임금을 따르려 한 사육신을 충신이라 칭하되, 대의를 갖고 대대적 개혁에 나섰다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한 조광조를 충신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권신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사회를 바로잡아 제대로 된 국가, 제대로 된 사회를 세우려 한 조광조는 그 충심(衷心)에도 불구하고, 왕에게의 충심(忠心)을 의심받아 실패했다.
조광조의 실패가 곧 조선의 실패라는 시각도 있고보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충심(衷心)이나 충심(忠心)이나 모두 올곧은 마음임엔 틀림없는데 받아들이는 이의 입장에 따라 이리도 결과가 달라진다.
이명박 정부가 사면초가에 몰려있다. 경선때부터 BBK와 대운하 논란에 휩싸이더니 내각 인선과정과 친박 복당 시비로 민심을 잃기 시작하고, 급기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는 정권퇴출 구호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배후가 있는지, 10년 권세를 누린 좌파의 반격으로 봐야하는지 현재로선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취임 100일만에 20% 수준으로 떨어진 지지도를 보면 민심이반이 심각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수도 도무지 줄지 않는다.
문득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대통령은 뭘 했을까, 그보다 대통령을 만드는데 공을 세웠다 자처했던 이 정권의 실세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국민의 눈에 비친 '친이·친박논란'은 조광조가 혁파 대상으로 삼았던 중종조 권신들의 권력다툼에 다르지 않고, '고소영'이니 '강부자'니 하는 부자 내각 역시 부정축재한 탐관오리와 동일시됐다.
정부의 쇠고기 협상과정은 고려말의 무기력과 오십보백보로 여겨졌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새벽잠 설쳐가며 일했다고 억울해 할 수도 있지만, 결국 '민심'을 도외시한 결과다. 정권의 명분과 소신이 아무리 확고하다해도 민심에 아랑곳 없이 내 갈길만 가겠다면 그게 곧 독선이고 아집인 것을, 야당시절 그들 스스로 얼마나 자주 입에 올리며 정권을 공격했던 단어들인가.
기나긴 혼란끝에 당정이 장관고시 관보게재를 유보하고 미국에 '재협상에 가까운'요구를 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었겠지만, 미봉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한 충심(衷心)에서 나온 결론이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정권의 주류들이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충심(忠心)을 가졌었다면, 이제 국가와 국민으로 그 대상을 바꿔야 한다. 국민은 이 정부와 여당에서 조광조같은 장관, 조광조같은 국회의원들을 보고 싶다. 그 나머지가 대통령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