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초 정부가 하이닉스반도체 이천공장 증설을 불허하자 조용했던 이천시가 발칵 뒤집어졌다.

당시 이천시민은 머리띠를 두르고 항의집회에 나섰고, 국회의원을 비롯해 지역 정치인, 기업인 등은 삭발 투쟁 등으로 정부 방침에 강력히 반발했다.

이천은 전체가 수도권정비계획법(이하 수정법)상 자연보전권역에 포함돼 대기업 공장 신·증설이 금지되고, 환경정책기본법에 의해 상수원 보호를 위한 팔당특별대책지역으로 묶여 있다는 게 불허의 이유였다. 특히 정부는 특별대책지역에서는 구리를 사용하는 공장 입지가 원천적으로 금지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천시 장호원읍과 맞닿아 있는 충청북도 음성군의 반도체 업체인 D사의 경우는 달랐다. 팔당호 상류지역에 자리한 D사는 폐수배출시설 설치 제한지역에 포함되지만 수도권이 아니고, 팔당특별대책지역에도 속하지 않는다.

▲ 구리 배출이 문제가 돼 수년간 공장 신·증설에 난항을 겪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 이천공장. 반면 지척에 있는 동종 업체는 수도권에 포함되지않아 수월하게 생산라인을 증설했다. /전두현기자 dhjeon@kyeongin.com
▲ 팔당호 수질을 보전하기 위해 설정한 팔당특별대책지역에서도 일정 규모 이하 축산시설은 설치가 가능하지만 무공해 첨단기업은 강력한 규제에 막히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경인일보 DB
정부는 지난 2003년 법을 고쳐서 D사가 하이닉스와 똑같이 구리를 배출하는 공정이 포함된 생산라인을 증설하도록 했다. 지난달 26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수도권 지방 동반성장을 위한 정책방향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한 하이닉스반도체 관계자는 "하이닉스는 향후 4년간 18조2천억원의 신규 투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수정법과 산업집적활성화및공장설립에관한법률(이하 산집법), 수질보전 관련법 등의 규제로 투자가 지연되거나 효율적인 투자 결정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수도권규제정책은 하이닉스의 경우처럼 같은 업종이라도 수도권에 속하냐, 벗어나냐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만약 애초부터 하이닉스가 이천시가 아닌 충청도에 있었더라면 상황은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여기에 수도권 규제는 같은 지역에서도 다르게 적용, 또다른 차별을 야기하고 있다. 국내 기업과 외투 기업의 경우가 그렇다.

산집법은 수정법상 성장관리권역이라도 외국인 투자기업(이하 외투기업)의 경우 외국인 전용단지 안에서 전자집적회로·인쇄 회로판·광섬유 제조업 등 25개 첨단업종에 한해 한시적으로 공장 신·증설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반면, 국내 대기업은 첨단업종이고, 산업단지안에 있더라도 기존에 등록된 공장 넓이의 100% 범위 안에서만 신·증설이 가능하다. 첨단 업종에서 외투 기업보다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는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는 더욱 강한 규제를 받는 역차별이 수도권에서는 당연시되고 있다.

조세도 마찬가지다. 외투 기업은 조세특례법에 의해 법인세·소득세·취득세·등록세·재산세 및 종합토지세 등까지 감면받지만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 속한 기업들은 지방세법에 따라 본점으로 사용하기 위한 부동산 취득시 취득세와 등록세를 3배 더 내야 한다. 공장을 신·증설할 때도 재산세가 5배 중과세된다.

지난 1973년부터 35년간 이런 불합리한 조세제도가 유지됐다.

정부는 지난 11일 '경제활력 회복을 위한 기업환경개선 추진 계획'을 통해 수도권에서 창업하는 기업과 설립된지 5년 이내의 기업이 내야하는 취득·등록세 3배 중과세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취득·등록세는 현 6%에서 지방과 같은 2%로 낮아지지만 그 이전에 설립돼 지금껏 역차별을 받았던 수많은 기업들은 앞으로도 혜택을 받기 어렵다.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수도권 규제의 모순은 수도권 2천400만명의 젖줄인 팔당유역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수질 보전을 위해 설정한 팔당특별대책지역 1권역이라도 허가대상 이하 면적이라면 우사나 돈사, 계사 등 축산시설이 얼마든지 들어설 수 있다.

반면, 공해가 없는 첨단 업종은 하루 폐수 배출량이 200㎥를 넘어설 경우 입지가 불가능하다.

경기개발연구원 관계자는 "중앙정부에서 회의를 하다보면 수도권 규제 개선을 지역의 민원 쯤으로 생각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며 "정책 차원에서, 국가경쟁력 강화란 관점에서 접근해야지 단순히 경기도의 민원 정도로 치부한다면 이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