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은행들이 수출기업들을 상대로 환차손을 보전해주겠다며 대대적인 가입 유치에 나섰던 통화옵션 파생상품인 '키코(KIKO)'가 환율 급등으로 오히려 수출기업들의 목을 틀어쥐고 있어 줄도산이 우려되고 있다.

화공약품을 생산, 연간 500만달러를 수출하는 안산의 A업체는 지난 3월 B은행으로부터 통화옵션상품 가입을 권유받았다. 은행 직원으로부터 조만간 환율 900원선이 무너질 것이라는 말에 월 100만원에 달하는 상품에 가입했다.

그러나 최근 환율이 폭등, 환차손이 발생하면서 이 업체는 해당 은행에 해지를 요구했으나, 해지 수수료로 5억원을 내라며 사실상 해지를 거절당했다. 업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앉아서 수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화학필름을 생산하는 평택의 C업체도 지난해 11월 D은행으로부터 통화옵션상품을 권유받았다. 당시 C사는 350만달러를 수출했지만, 자본잠식 상태여서 가입자격이 미달된 처지였다.

하지만 D은행은 "신용등급을 B+등급으로 상향 조정해 주겠다"며 집요하게 유인, 결국 가입시켰다. 이후 C업체는 신용등급이 B+인줄만 알고, D은행측에 어음당좌거래계약을 신청했지만 은행측은 "신용등급이 C라며 약정이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29일 중소기업중앙회 경기지회와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도내 키코에 가입한 수백여개 기업들의 환율 상승으로 인한 손실액은 무려 2조5천억원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향후 환율이 더 올라갈 경우 피해액은 더 커질 전망이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8일 "수출기업의 피해가 급증한 것은 환율이 급반등했기 때문으로, 환헤지 금융상품인 '키코'와는 무관하다"며 불공정 거래라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공정위의 판결에 반대하는 환헤지 피해 기업 100여개는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 집단소송 등 강력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수출기업인 A사 관계자는 "키코 계약은 고객에 부당한 조항"이라며 "공정위의 결론은 문구상의 내용에 치우친 것으로, 수출기업의 현실적인 손실이 전혀 고려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은행연합회는 "파생상품 거래시 위험고지서나 거래계약서를 통해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고 고객서명까지 받고 있다"며 "일부 위험 고지가 부족한 사례가 있다고 해도 이를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