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수 (경인플러스 부장)
1997년 여름의 일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은 15대 대통령후보 경선 열기로 뜨거웠다. 9명의 후보가 출마했고, 그들 중엔 이한동 전 국무총리도 있었다. 그는 자타가 공인했던 경기도의 정치거목이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기도가 새로운 정치 중심 세력으로 등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인물이었다. 망국적인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합리적 보수세력인 경기도가 정치의 중심에 서자는 경기도 대망론을 앞세웠다. 그의 주장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인천까지를 포함한 범경기권은 인구와 국회 의석수 등 정치적 부존자원만 놓고 보면 타 지역을 압도할 규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 총리는 1차 경선에서 3위를 했고,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2위를 차지한 사람은 당시 경기도지사, 이인제 현의원이었다. 두 사람 표를 합해도 1위를 차지한 이회창 현 자유선진당 총재의 표수를 넘지 못했다. 1, 2위가 붙은 결선투표 결과는 이회창의 승리로 끝났다.

당시 이 전 총리 경선캠프 핵심들의 고민은 아무리 경기도 대망론을 앞세워 지역정서에 호소해도 경기도 대의원 표가 결집되지 않는 데 있었다. 오히려 충청도 출신인 이 의원이 도지사 프리미엄으로 이 전 총리의 경기도 맹주론을 압박하는 지경이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한 참모의 울분에 찬 토로가 기억난다. "아니 경기도에서 먹고 자고 싸고 애낳고 세금내면 경기도 사람 아닌가." 경기도의 다수를 차지한 외지인들이 도대체 반응을 보이지 않자 터트린 울분이었다. 하지만 이 전 총리의 패인은 그뿐이 아니었다. 대의원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 국회의원과 지구당 위원장들마저도 차기 공천을 의식해 대세를 추종하는 바람에 세 결집에 실패한 것이다.

그 이후 10여년이 흘렀다. 그리고 경기도의 정치적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원주민 수는 더욱 줄고, 진보세력이 집권한 10년 동안, 경기도 신도시를 중심으로 여야의 명망가 낙하산 공천은 더욱 극심해졌다. 지역은 남북으로, 동서로, 도농으로, 신구 도심으로 더욱 세분화, 개별화됐다. 이런 추세는 경기도의 정치력을 잘게 잘게 쪼개버린 결과로 나타났다. 국회의원들은 경기도 전체이익을 외면한 채 지역구 챙기기에 집착하고, 국회의원들은 주체성을 잃은 채 차기 공천에 자신의 정치력을 올인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도 출신인 손학규 전 도지사가 대권을 희망했으니, 사상누각이었을 뿐이다.

이제 경기도는 정치적으로 무중력 지대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뿌리 없이 부유하면서, 그 큰 덩치로 지방권력의 하수인 역할에 머물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대선 핵심 공약인 수도권 규제완화를 뒤로 미루고 지역발전 정책을 앞세워도 아무 반응이 없는 이유이다. 경기도와 31개 시군이 규탄대회를 벌여도 51개 지역구 국회의원 중 달랑 5명만 참석하고, 수도권을 규제하자는 지방 국회의원들의 연구 모임에 지역 국회의원이 아무 생각 없이 가입하는 게 괜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경기도를 포함한 수도권의 정치무중력 현상이 경기도의 피해만으로 끝나지 않는 데 있다. 국가경영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진보정권 10년간 더욱 심화됐다. 1당이 독재하는 지방권력이 승객도 화물도 없는 지방공항을 건설하고, 수송효율이 미미한 호남고속철도 계획을 확정해도 이를 견제할 세력은 없었다. 그리고 국가경제의 핵심동력인 수도권이 규제로 인해 성장의 한계에 직면해도, 이를 강력하게 경고할 정치세력 또한 없었다. 부유하는 정치세력으로 인해 대한민국 인구 절반의 대의가 왜곡되고, 대한민국 경제엔진이 녹슬고 있는 형국이다.

10년 전에 비해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은 인구도 늘었고 국회 의석수도 늘었다. 변함 없는 건 수도권 정치인들의 초라한 리더십과 간장종지만 한 세계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