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영(경제부장)
"불경기 맞아?" 회식이나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일행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경제는 말이 아닌데 음식점마다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경기가 어려울 때 가장 줄이는 비용이 외식비이거늘 역설적이게도 음식점은 붐빈다. 그러나 음식점에 사람이 많다는 판단에는 오류가 있다. 모든 음식점마다 손님들로 넘쳐나는 것이 아니다. 규모에 관계없이 '되는 집만 되고' 있다. 오랜 전통, 맛을 내기 위한 연구, 친절한 서비스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월등한 경쟁력을 갖췄음에야 격려와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명한 맛집'이 되기까지 인터넷 등을 통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홍보에 못미치는 집도 허다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기쓰고 그 집에 줄서서 대기하며 유명세를 경험하고 싶어한다. 양극화 현상이 우리가 느끼지 못한 사이, 음식점 등 일상생활에까지 침투했다는 데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되는 집만 되는 최근의 1년동안 7만3천명 가량의 자영업자들이 간판을 내렸다.

지난 7월 민간소비가 23개월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재래시장과 동네슈퍼가 파리 날리며 죽어 나갈 때 백화점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 롯데와 신세계백화점은 작년 동기대비 13~16%의 매출이 증가했다. 최고 수훈갑은 다름아닌 명품. 지난달 전국 백화점의 명품 매출 증가율은 30.7%로 지난 5월 39.1% 이후 3개월째 30%대의 증가율을 보였다. 불경기일수록 고소득층의 소비를 유도해야 경제가 돌아간다는 원리에는 공감하지만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짜리 명품들만 잘 팔려 백화점들이 쾌재를 부르고 있는 현실에 씁쓸함을 느낀다.

건국 60주년을 맞아 대사면이 단행됐다. 사면 대상에는 예견됐듯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최태원 SK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빅 3'를 비롯해 경제계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죄를 물음에 있어서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양극화가 고착화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올림픽 열기가 2주째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대회 초반부터 순조롭게 금메달을 따며 10-10의 목표에 접근하는 대한민국 선수단의 선전에 국민들은 열광한다. 경기침체와 정치분열로 우울함을 넘어 이젠 지쳐 내팽개쳐진 국민들의 삶에 엄청난 에너지를 선사한 그들이 고맙다. 누구든 최고의 위치에 올라 상을 받고 영웅이 되고 존경을 받는 것은 어느 사회, 어느 계층에서나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금메달만큼이나 값진 은메달·동메달을 딴 선수도 있다.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한 꼴찌 선수들도 있다. 그들도 국내에서는 최고인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이들에게 보내야 할 감동과 격려의 박수를 잊고 마는 스포츠계의 양극화가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18대 국회가 임기 개시 82일만에 원구성에 합의했다. 국민의 대표들은 두달이 넘게 자신들의 직무를 유기했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며 국민들이 포기한 집단이라지만 머리 조아리며 사과해도 모자라는 판에 마치 목숨 걸고 싸워 이긴 개선장군마냥 당당하게 카메라 촬영을 하는 모습에 씁쓸함을 넘어 공허감마저 든다. 공무원이나 직장인, 1일 잡부들이 80여일 아니라 단 2~3일 동안이라도 직무를 유기했다면, 제도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용서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양극화된 직업과 신분의 차이에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하다. 정말 되는 집만 되는 것일까.

2003년 5월. 당시 두산 베어스는 경기만 했다하면 연패하며 꼴찌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같은달 23일 잠실야구장 관중석에는 두산 팬들이 이런 플래카드를 내걸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우리는 승리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여기에 자극받은 두산 베어스는 롯데에 역전승하며 연패에서 탈출한다. 꼴찌에게도 박수를 보내는데서, 1등도 고개를 숙이는데서 양극화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듯 싶다. 영원한 꼴찌는 없는 것처럼 되는 집만 되라는 법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