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의 독특한 전통인 산담은 장사법이 고유의 장사문화를 아우르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제주도/김창훈기자 chkim@kyeongin.com

지난 17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의 제주돌문화공원. 제주인들의 삶과 죽음·신앙·생활 등을 주제로 한 야외전시장 한 쪽에 만들어진 견고한 돌담이 둘레를 에워싼 무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돌담을 표준국어대사전은 '사성(莎城)'이라 정의내렸지만 제주 사람들은 '산담'(산소의 담)이라고 부른다. 으레 산담 안쪽에는 동자상이 세워졌다.

농경지 옆에 묘를 썼던 제주에서는 가축이 묘를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오래 전부터 산담을 쌓았고, 이런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청 공무원 이모씨는 "십수년 전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산담을 쌓으며 고인을 애도했다"며 "요새는 전문적으로 산담 쌓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제주도의 화장률은 41%. 전체 사망자 중 절반 정도는 제주에 묻혔고, 많은 무덤 주위에는 산담이 쳐졌을 것이다. 하지만 장사등에관한법률(이하 장사법)은 산담을 분묘 시설물로 인정하지 않는다. 분묘의 시설물은 2 이하의 비석 1개와 상석 1개, 기타 석물 1개 또는 1쌍으로 정해졌다. 기타 석물 가운데 인물상은 금지됐다. 따라서 제주의 전통인 산담이나 동자상은 불법 시설이다.

제주의 산담처럼 장사문화에는 지역 특색과 전통이 녹아 있다. 그 안에는 망자의 넋을 기리고, 이승에서 편히 보내주기 위한 추모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교회의 시작은 순교자들의 묘지였고, 가톨릭의 미사는 제사의식이다. 불교의 다비(茶毘) 역시 추모의식이다.

종교의 장사문화는 장사법이 정한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구체적이고, 엄격하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강하다.

하나 장사법은 이런 장사 전통과 종교의 추모문화 등을 담지 못했고, 그나마 다른 법률들에 의지하고 있어 지위조차 명확하지 않은 형편이다.

개정된 지 1년여밖에 안됐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기성 한양대 행정·자치대학원 교수는 "지금도 지관(地官)의 '터가 좋지 않다'는 한 마디는 법률의 제한보다 훨씬 강력하다"며 "부모의 묘를 좋은 곳에 쓰고 싶은 마음과 민간의 고유풍습, 종교의 추모의식 등을 외면하는 것은 큰 문제점"이라고 밝혔다. 또 "장사법은 법률 명칭과 입법 목적 등에서 장사시설이 혐오시설이란 점을 부각하고 있어 대표적인 '갈등조장법'으로 불린다"면서 "이는 추모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뿐 아니라 주민이 싫어하는 정책 개발은 기피하는 안이한 입법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장사법에 대한 불만은 상당하다. 도 관계자는 "일반법이기 때문에 수많은 제한 규정에 막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면서 "특별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우환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특별법 격상이 어렵더라도 일반법에서 큰 흐름을 바꾸는 개정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특히 매장 외 다양한 방법의 자연장을 수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개정 및 장례에 대한 모든 사항을 관장할 수 있는 장례지도사의 법제화 등이 요구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