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을 일삼아 온 아버지를 살해, 시신을 토막내 버린 뒤 죄책감에 술과 도박에 빠져 살던 40대 남성이 범행 14년여 만에 법원 판결로 죗값을 치르게 됐다.

 아버지의 외도와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자란 김모(42) 씨는 성년이 된 후에도 폭행이 그치지 않자 앙심을 품었으며 아버지가 가게를 임대해주고 받은 보증금의 일부로 내연녀에게 건물을 사준 것을 알고 심한 배신감을 느껴 그에 맞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장성한 아들을 당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화장실에 가는 것도 두려워 방안에서 일을 해결할 정도로 관계가 역전됐으며 김씨의 여동생은 끊이지 않는 폭력이 싫어 집을 나가 혼자 사는 등 가정이 파탄 날 지경에 이르렀다.

 김씨가 28살이 되던 해 4월 초,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괴롭히다김씨와 다투었고 가족은 김씨 부자를 남겨두고 딸 집으로 자리를 피했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온 가족에게 김씨는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고 둘러댔지만 집안 벽 틈에서는 핏자국이 발견됐고 며칠이 지나자 김씨의 방에 있는 붙박이장에서썩는 냄새가 나고 벌레가 끓는 등 비극을 암시하는 정황이 발견됐다.

 이후 주민등록이나 국민연금, 출입국이나 보험 기록 등에서 아버지의 행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며 끝내 그를 찾을 수 없게 되자 가족들은 다음해부터 제사를 지냈다.

 아버지가 실종된 지 14년이 흘러 완전히 잊힌 듯했으나 올해 초 안양 초등생 실종ㆍ살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수사기관에 미해결 실종 사건에 대한 제보가 폭주하기 시작했고 공소 시효를 불과 1년여 남겨두고 무서운 진실이 드러났다.

 수사당국은 '아들이 일정한 직업 없이 술과 도박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는 가족이 있는데 14년 전 실종된 아버지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제보를 바탕으로 김씨가 14년 전에 아버지(당시 65세)를 살해해 시신을 집안에 감춰뒀다 토막 내 버린 사실을 밝혀내고 존속살해 혐의로 그를 구속기소했다.

 그는 수사 및 재판에서 "아버지와 싸우다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뒤 시신을 방에 보관하다 부패하자 토막 내 식구들 몰래 인근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 버렸고 주변의 몇몇 사람에게 이를 털어놓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범행 후 시간이 많이 지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1심 법원은 범행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징역 12년을 선고했고 김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11부(이기택 부장판사)는 김씨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12년을선고했다고 14일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가 수사를 받을 때부터 1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범행을 시인했고 당시 상황에 대한 가족과 지인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그가 아버지를 살해하고서 시신을 잘라 유기한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이어 "그가 어린 시절부터 오랜 기간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고 우발적으로 범행했으며 범행 후 14년간 죄책감에 시달린 점을 고려하더라도 1심의 형(刑)이 너무 무겁다고는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