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스태프, 선수들의 투혼과 함께 인천시민들의 '야구사랑'이 일궈낸 역작이다. 한국야구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전승으로 값진 금메달을 따내면서 한국 올림픽사를 다시 쓴 것도 어찌 보면 김광현, 정대현, 정근우, 이진영 등 SK 주전선수들의 활약 없이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렇게 시즌을 되돌아보거나 '겨울난로'에 불을 지피기에 앞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이 있다. 불과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야구 월드컵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국가대표 선수단 구성이다.
이제 선수단 구성을 둘러싼 파열음은 프로구단과 선수뿐 아니라 팬들의 걱정거리로 다가왔다. 지난 2006년 있은 제1회 대회 때 숙적 일본, 미국을 꺾고 4위를 차지한 투혼과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생각하면 제2회 WBC 우승은 그리 멀리 있는 것 같지는 않다. SK가 아시아 시리즈에서 의외의 퉁이팀에 패한 것을 보듯 철저한 상대팀 분석과 함께 과거 투혼이 전제가 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은 명예의 상징인 태극 선수후보들이 국가(국민)보다는 개인의 실리, 명분을 좇는 것 같아 아쉽다.
감독직은 김성근·김경문에 이어 김인식으로 넘어 왔고, 현직 감독인 김재박, 김시즌, 조범현도 코칭스태프 참여를 반대하거나 미온적이다. 국가팀보단 자신이 맡은 프로구단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투타의 정신적 지주인 박찬호와 이승엽은 선발 전부터 개인사정을 대며 손사래를 쳤다. 김인식 감독도 요구사항 수용을 전제로 감독 취임을 약속한 만큼 선수단 구성문제가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태다. 합류가 가능한 가용재원인 추신수(클리블랜드), 이병규(주니치), 임창룡(야쿠르트) 등이 있지만 이마저 확실한 처지는 아니다. 왜 유명스타, 올림픽 영웅들이 태극 마크를 달기를 꺼릴까? 당사자들은 부인할지 모르지만 우승해야 본전이라는 실리와 성적 부진시 개인 명예 추락이란 명분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제1회 대회와 베이징 올림픽 이후 국민들의 높은 기대감을 볼때 '우승'이란 결과물이 안 나올 경우 발생할 걱정이 이들의 기저에 있다. 여기에 이번에는 병역면제나 보상 등 당근이 없다.
물론 구단과 선수들은 국가대표 차출로 인한 부작용, 즉 '김동주 효과'(1회 대회 출전 후 부상으로 시즌 성적 저조)를 우려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다. 프로에 앞서 한국을 대표하는 운동선수들은 아마 투혼을 보여줘야 한다. 미국과 일본을 꺾고 WBC 우승을 할 경우 경제 위기로 주름간 서민들의 얼굴을 말끔히 펴 주는 '진정효과'가 있을 것이다. 김동주 효과를 넘을 수가 있다는 얘기다. 스포츠, 프로야구가 외환위기 때 박세리가 벙커에서 멋진 타로 국민들을 달래 주었듯이 한몫을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설사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이라도 보여준다면 국민들도 공감할 것이다. 축구가 부진할 때 야구가 한 번 해주네 하고 기뻐할 것이다. 선수단 구성이 지지부진하자 일부에선 차라리 SK 선수들을 중심으로 선수단을 꾸리자는 지적도 있다.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WBC 경쟁 상대는 어떤가.
일본은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감독을 국가대표로 선임하고 히데키(뉴욕 양키스),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이와무라리 아키노리(템파베이) 등 메이저 선수가 대거 포함된 '사무라이 재팬팀'을 구성했다. 중남미의 야구강국 멕시코와 도미니카도 비니 카스타야와 스탠 하이에르 감독을 각각 선임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우리도 하루 빨리 최선이 아니면 차선으로라도 선수단을 구성한 뒤 승리 전략을 짜야 한다. 정부도 대만같이 전임 감독제 검토와 함께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주어야 한다. 겨울 난로 앞에 앉아 있을 여유가 없다. 프로도 때론 아마추어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