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권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은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의 아픈 기억을 담고 있다. 요즘 들어 이같은 인사말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국민들의 소득은 제자리 걸음이고, 씀씀이는 대폭 줄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경제 한파에 대한 불안감에 모두들 점점 더 허리띠를 동여매기 시작했지만, 가계부 압박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금리와 환율 급등에 따라 대출이자나 해외송금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 명예퇴직이다 구조조정이다 해서 청춘을 바쳤던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대공황 이후 최대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은 '2008년 겨울'. 외환위기 이후 11년만에 가장 혹독한 겨울이 시작됐다.

뉴욕 월가가 진원지인 '금융위기' 폭풍은 전세계 선진국들을 모조리 초토화시킨 뒤 이제 한국을 향하고 있다.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지만 피부는 이미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시련이 갈수록 혹독해질 것을 알기에 지금의 추위마저 고통스럽다.

설마설마하던 위기가 어느덧 우리를 옥죄고 있다. 실제로 코스피는 1천선으로 절반 이상 폭락했고, 원·달러환율은 900원대에서 1천500원대로 50% 이상 상승하며 원화가치는 폭락했다. 강남 노른자위로 불리는 곳에서조차 아파트 미분양이 나올 정도로 부동산 값도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무성했던 나뭇잎이 화려한 단풍으로 뽐내던 시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고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한겨울이 찾아온 것처럼, 우리의 살림살이도 꽁꽁 얼어붙고 있다.

그야말로 위기다. 정부가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내놓는 대책은 믿을 수 없다는 신뢰상실의 위기도 가세한다. 이제 11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더 길고, 더 어려운 위기는 불가피하다는 체념도 위기를 가속화시킨다.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눈높이를 낮추지 않는 한 이들에게 취직은 '그림의 떡'이다. 그나마 얻을 수 있는 일자리도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결혼하면서 한껏 끌어썼던 주택담보대출은 금리급등과 함께 이자폭탄을 퍼붓고 있다. 결혼자금 마련을 위해 주식이나 주식형펀드에 투자했던 돈은 반토막이 났다. 여기에 '기러기아빠'들은 원·달러 급등에 치를 떨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위험인 동시에 절호의 기회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30여년 동안의 압축성장에 따른 군살을 도려내고 글로벌 우량기업을 키워냈듯이, 이번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일, 바로 정부가 풀어야할 숙제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구제할 방도가 없음을 깨닫는 순간, 삶을 포기하거나 혹은 어떤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극적으로 구제되는 것을 꿈꾼다. 물론 그 외부적 요인이란 것은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불확실하며 막연하다. 실현 가능성이 드물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작은 실현 가능성에라도 매달리지 않으면 안될 만큼, 지금의 국민들에겐 희망이 없다. 희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역할이야말로 정부가 할 일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양털을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깎는다고 한다. 모든 동물들이 겨울준비를 하기위해 식량을 비축하고 살을 찌우고 동면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더 양털을 키워줘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도 굳이 찬바람 불기 전에 오히려 털을 깎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털이 깎인 양들이 얼어 죽지 않으려고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면 오히려 더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새벽 공기처럼 우리네 살림살이가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시련의 날, 고난의 시간들이 오히려 더 건강한 삶을 위한 또다른 시작일 수 있다. 빨리 달려간다고 해서 먼저 도착하는 것이 아니고 잘 나간다고 해서 항상 웃는 것만은 아니다. 다만 주어진 오늘 하루 겸손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