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은행들이 전례없이 강력한 대출회수와 강제추심에 나서고 있다는 보도다. 경제와 관련된 암울한 소식이 비단 이것뿐이겠냐만, 지금같은 경제위기 상황, 특히 정부와 기업, 온 국민이 경제회생에 몸부림을 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은행들의 기능과 역할을 새삼 되새겨 보게 하는 뉴스인 것 같아 착잡하기만 하다.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전 세계적 불황에 환율 상승과 키코 피해 등 온갖 악재까지 함께 겪고 있는 기업들은 자금이 꽁꽁 묶이면서 부도를 목전에 둔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수출과 내수가 동반 하락하니 당연히 매출이 급감하고, 평소에도 유동성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심각한 자금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들이 믿을 곳이라곤 은행뿐이다. 기업들로선 투자확대는 고사하고라도 당장 발등의 불이라도 끄려면 은행대출 밖에 방법이 없다. 정부가 엄청난 자금을 풀어가며 대출을 늘리라고 은행들을 독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시중 은행들 사이에 '나부터 살고보자'는 위기의식이 워낙 팽배하다는 점이다. IMF시절 '은행도 망한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했거나 목도했던 시중 은행들은 경제가 악화되면서 곧바로 대출회수와 추심 등 문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말 0.7%대에 머물던 대출연체율이 1년여 사이 1.18%까지 급등한 걸 보면 은행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은행 돈을 쓴 기업이 어려워지면 대출자금은 위험자산으로 바뀌고, 기업이 부도나면 고스란히 대출연체나 회수불능 상태가 된다. 은행의 BIS비율이 하락하고 이는 다시 대외신인도 추락으로 이어진다. 은행으로선 '내 코가 석자'를 외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은행들이 IMF때의 아픔을 떠올려 대출제한에 나서듯, 역시 IMF가 우리에게 준 또다른 교훈을 떠올렸으면 한다. 기업이 줄도산하면서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도 곧이어 풍비박산이 났다. 은행과 기업은 숙명처럼 공생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은행 역시 이윤을 남기고 살아남아야 할 기업이지만, 한편으론 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주역이 돼야 할 '역할'도 있다. 은행들은 작은 위기만 넘기면 얼마든지 공생의 파트너가 될 기업들까지 획일적 잣대로 고사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도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은행들이 위기의식과 경직된 자세를 변화할 수 있도록 실질적 대책을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