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수원 K직업전문학교. 두달여전 이곳에 입학한 김모(23·안산시 상록구)씨는 서울의 유명 영화전문주간지에서 1년6개월간 일하던 당시의 서러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입사 당시 회사는 '학력·출신에 아무 차별이 없다'고 했지만 동료들은 2년제 출신이라며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무시의 눈길을 보냈고 업무에서도 표시나지 않는 불이익이 이어지면서 결국 사표를 던졌다. 어디간들 할 일이 없겠냐던 자신감도 잠시, 말로만 듣던 '청년실업'의 굴레에 고통받던 김씨는 수원고용지원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으면서 과감히 직업학교를 선택, UCC 동영상제작 과정에 등록했다.
"처음엔 실패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란 생각에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학벌 때문에 눈물을 삼킨 마당에 제대로 제2의 삶을 준비하자며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불황이라지만 이젠 정말 자신있습니다." 그는 직업학교에서 쌓은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웹에이전시·디자인에 승부를 걸 작정이다.
대학 졸업장이 곧 실업자 증명서로 전락하는 불안정성의 시대, K직업전문학교에 모여든 젊은이들의 얼굴에서는 들뜬 연말 표정도 흥청거리는 송년 분위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만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돼 버린 세태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이들은 '내일의 IT 전문가'로 우뚝 서기 위해 2008년 마지막날까지 컴퓨터 마우스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나갔다.
6년간 물류단지에서 하차 업무를 하다 지난 10월 이곳에 들어온 양모(33·화성시 남양동)씨도 어느새 포토샵과 프리미어에 능숙해진 자신 스스로가 너무도 대견스럽다. 박봉과 부상의 위험까지는 감내할 수 있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던 직장을 그만둘 때는 부모님들조차 "30대 중반에 뭘 하겠냐"며 뜯어말렸지만 그는 이제 홈페이지를 자유자재로 구축하는 새해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하루하루가 신명날 뿐이다.
이들이 밟고 있는 과정은 노동부가 지원하는 '실업자 재취업과정'. 수강료와 교재가 무료로 지급되고, 교통비와 식비로 매달 11만원의 수당도 나온다. 대신 학업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하루 8시간 이상씩 4~6개월 과정을 꼬박 이수해야 하며, 포트폴리오 제작과 조별 프로젝트도 마쳐야 비로소 수료와 함께 취업알선 자격이 주어진다.
불황이 심화되면서 학원문을 두드리는 발길은 늘고 있다. 당장 연말·연초에도 웹디자인과 UCC 동영상제작 과정이 개설돼 100여명의 학생이 '열공' 중이며, 불황으로 취업이 되지 않은 일부 수료생들까지 매일 학교에 남아 취업 자습에 여념이 없다. 연령대도 20대 초반에서부터 4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학교의 경우 올해 수료 인원 300명 중 70% 이상인 200여명이 취업에 성공, '전문기술이 취업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K학교 이원종 기획총괄실장은 "많은 사람들이 '실업'을 자칫 '인생실패'로 오인하면서 재기를 망설이지만 내일을 향한 희망과 도전, 그리고 실패경험까지 더해지면서 이곳 학생들의 열정과 실력만큼은 어느 일류 대학 못지 않다"며 "기축년 새해는 모두 그들의 것"이라고 단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