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흐름을 잃고 막혀버린 자금경색 현상이 심화하면서 서민가계는 말그대로 백척간두에 선 형국이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는 과정에서 IMF이후 온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던 실업대란의 악몽이 재현되고 구조조정이라는 미명아래 수많은 가장들이 길거리에 내몰릴 위기에 처해있다.
 연말 자금수요가 겹친 기업체들은 물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대다수 서민들이 막혀버린 돈줄 때문에 아우성치고 있지만 금융권은 회수가 불투명한 대출을 일체 외면하고 있다.
 이때문에 서민들은 연말에 밀물처럼 몰려들어올 제세공과금과 카드대금앞에 속수무책인채 카드대출로 카드 결제를 막는 제살깎아먹기식 임시변통이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지탱해야할 처지다.
 실업 또는 퇴직이후 창업을 위해 목돈이 필요한 서민들은 금융권 대출이 막혀버린 상황에서 지자체의 실업대책자금이나 중소기업청의 소상공인자금등 몇몇 정책자금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정책자금이 종류가 한정돼 있는데다 넘쳐나는 수요에 비해 그 규모가 지나치게 작다는 사실.
 경기도의 경우 지난 5월 전국 최초로 100억원의 기금을 조성, 실업대책자금을 융자하고 있으나 6개월여만인 지난달말 현재 이미 63억여원이 지원돼 잔액은 37억여원에 불과한 상태다.
 중기청의 소상공인자금의 경우는 지난달 15일을 전후해 2천900억원의 기금이 모두 소진, 높은 이자를 감당해야하는 은행자금으로 전환돼 말뿐인 정책자금이 된지 오래다.
 여기에 약속이나 한듯 원리금 상환기간이 모두 1년 거치(실업대책자금 2년균분상환, 소상공인자금 3년균분상환)로 돼 있어 이들 정책자금을 얻어 창업한뒤 1년이내에 원리금을 갚아나가지 못할 경우 꼼짝없이 '신용불량거래자'가 돼야한다.
 하지만 불황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상태에서 여유자본없이 창업후 1년만에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나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서민 창업자들의 하소연이다.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짧은 상환조건이 결과적으로 경제 전과자만 양산해 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동안 잠잠하던 사채시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사실도 어려운 서민가계를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데 일조하고 있다.
 제도권 금융기관들이 대출은 커녕 기존 대출 회수에 나서자 유사 금융기관은 물론 무허가 사채업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이들의 대출금리는 자금난에 편승, 월 20%, 최고 60%이상까지 적용되고 있다.
 그나마 선이자 지급방식이기 때문에 100만원을 대출받았다 하더라도 실제 입금되는 금액은 첫달 이자를 뗀 80만원이 고작이다. 지난 98년 1월 이자제한법이 폐지된 이후 사채업자들의 여신행위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어 사채업자들의 횡포는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자금흐름이 막혀있는 상황에서 서민가계를 살릴 수 있는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단계에서는 창업을 원하는 서민들에게 목돈을 융자해 줄 수 있는 정책자금의 종류와 기금을 확장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상환기간도 현실에 맞게 대폭 연장해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실 대기업 회생에 쏟아붓는 돈의 극히 일부만 서민가계 지원에 사용하면 경제적 사형선고를 받을 영세 소상공인 수십만명을 살릴 수 있다는 논리다. 파급여파가 작다는 이유때문에 무관심속에 하나둘 나자빠지는 서민들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裵相祿·裵鍾錫기자·bsr@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