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민정이 23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내놓은 합의문은 각 경제 주체들이 서로 고통을 나누는 방식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과 진보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모두 불참했기 때문에 합의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자리 나누기ㆍ유지 위해 고통분담 = 노동계는 기업의 경영여건에 따라 임금동결ㆍ반납 또는 절감을 실천하고 경영계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자제해 기존의 고용수준을 유지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 같은 합의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노측은 불법파업을 근절하고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파업을 자제하기로 했으며, 경영계는 이에 화답해 부당노동행위를 뿌리 뽑기로 했다.

   또 기업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일방적 감원보다는 희망퇴직을 최대한 활용하고 노사민정은 채권금융기관들이 노사의 고통분담과 일자리 나누기 노력을 최대한 존중하기로 서약했다.

   이번 합의문에서는 아울러 정규직을 대신해 경제위기의 일차적인 피해계층으로 꼽히는 비정규직, 하청ㆍ협력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 의지도 천명됐다.

   노사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임금을 동결ㆍ반납ㆍ절감하는 재원을 사내 하청업체와 협력업체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해 지금까지 유례가 없었던 노사(勞使) 및 노노(勞勞) 간 화합이 경제위기를 계기로 현실화할 지 주목되고 있다.

   ◇정부 추경예산으로 기존 제도 보강 = 정부가 이번 합의문에서 도입하거나 새롭게 추진하는 대책은 없지만 추경예산을 반영해 최대한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단계에서 지원 규모를 미리 제시할 수는 없다"며 "관계부처는 예산이 합의에 반영되도록 노력하겠고 총리실에서 모든 걸 점검하는 체계를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제도의 틀에서 추경예산을 반영해 일자리를 나누는 기업, 실업자와 영세자영업자 등 취약계층 등에 대한 지원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합의를 이행하겠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나눈 기업에 대한 세제지원, 임금을 절감한 중소기업에 대한 절감액의 손비처리 등도 대부분 이미 추진되거나 시행 중인 것들로서 특단의 대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직업훈련 강화, 청년취업 촉진, 실업급여 지급 확대, 고용유지 지원금의 지원수준을 상향조정, 우량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보증 확대 등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제도적 지원 외에도 물가안정을 위한 국민의 교육비 경감, 부동산 가격 안정화, 공공기관 경영효율성 제고를 통한 공공요금 인상 억제 등 서민생활 안정 방향도 합의문에서 제시했다.

   ◇민주노총 불참으로 실효 불투명 = 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이 끝내 불참했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의 실효성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세중 대책회의 의장은 "유감스러운 일은 민주노총의 참여를 유도하지 못한 것"이라며 "앞으로 합의가 이행될 때라도 민주노총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합의 이행에 참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노동계 안팎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처음부터 분명한 의도가 있었던 회의였기 때문에 참여할 뜻이 없었고 앞으로도 참여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합의의 핵심은 노동자 임금삭감"이라며 "이는 경제위기를 경제파탄으로 몰고 가는 대단히 위험한 대책"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제위기 극복의 핵심 해법은 내수활성화임에도 근로자의 소득을 감소시킴으로써 실질 구매력을 낮춰 경제를 악화시키고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고통을 전가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특정 계층의 임금을 10% 낮추는 것, 대졸 초임자의 연봉을 깎는 것 등이 모두 이번 합의와 마찬가지로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자는 의도"라며 앞으로 법제도 개정과 관련해 정부와 기업에 대한 투쟁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