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용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어느 부모가 자기 아들의 승진을 앞두고 직장 상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고 가정할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우리 아들은 일류 대학을 나와 업무 능력은 뛰어날지 모르지만 인성에 결함이 많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을 우습게 알고 자기만이 최고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오만과 편견으로 항상 자기 주장만 하고 남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 아들을 승진시키면 회사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가 자식의 출세를 망치고 있다 욕을 할 것이다. 또 이 부모를 훌륭하다고 말하기 보다는 미친 사람으로 매도하려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것이 질 낮은 교육열, 과도한 경쟁, 부정부패, 비리 등 복합장애로 중병을 앓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 주소이기 때문이다.

중국 고사성어 '조괄병서'라는 말이 있다. 춘추전국시대 조나라 장수 조괄은 병서를 많이 공부하여 명성이 자자했고 본인도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병서의 전술만 원칙대로 따르다가 진나라에 대패, 나라가 망한 뒤 자살하고 말았다. 이처럼 원칙론자의 어리석음을 비웃을 때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그러나 조선조의 이익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이같은 해석에 이의를 제기했다. 역사학자들이 조괄의 패인을 병서 제일주의에만 돌리고 더 큰 원인에는 눈을 감았다는 것이다. 또 조괄 어머니의 진정한 자식사랑이 간과된 점도 무시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

조나라 왕은 당대 최고의 명장 조사가 죽자 아들 조괄로 하여금 아버지의 자리를 잇게 하려 했다. 그러자 조괄의 어머니는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그 아비 조사는 장수가 되어서도 친히 음식을 받들어 모시는 사람이 10여명이었고 벗으로 지내는 사람은 100명이 넘었습니다. 또 상을 받으면 부하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 직책을 맡은 날 부터는 사사로이 집안일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장수가 되자 하루아침에 문안을 받으려 하고 부하들은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합니다. 나라에서 내려준 금백은 집안에 간직하고 날마다 좋은 땅을 사들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라고 아들의 잘못된 인성을 자세하게 상소했다. 하지만 조나라 왕은 이를 듣지 않고 조괄을 중용했다가 결국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해 망하고 말았다. 이익은 이 점을 중시했다. 부하는 돌보지 않고 이재에만 밝으며 병서를 잘 안다는 교만이 넘쳐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장수는 패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식에 대한 뜨거운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는 흔히 자녀 교육에 관해 말할때 맹자 어머니를 거론한다. 공동묘지 부근, 시장터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세번이나 이사한 끝에 서당 인근에 자리잡은 그녀의 교훈을 실천하는데 우리는 지나칠 정도다. 50, 60년대는 명문중학교 입시성적이 좋은 초등학교 부근에 위장 전입이 넘쳤고 고교평준화가 실시된 80년대 이후에는 좋은 학군을 찾아 극성을 떨었다. 외형적으로는 모두 맹자 어머니였다. 그러나 인성교육을 중시한 진면목은 보지 못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불법, 비리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자기 자식 학과성적 올리는데만 열을 냈다. 그걸 보고 겪으며 배우고 자란 세대들이 지금 이 사회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 우리 사회가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아니라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기초학력평가'와 그에 따른 부작용 등으로 온통 시끄럽다. 많은 어머니들은 우리 자식의 장래가 혹시나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태산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자식에 대한 정서로 이것이 전적으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어머니들이 맹자 어머니가 아닌 조괄 어머니를 닮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학과성적에 따라 모든 것이 좌우되는 우리의 교육 현실, 성공을 위해서는 불법과 편법을 가리지 않는 교육현장.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앞에 참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공익을 위해 자식의 출세도 희생시킬 줄 아는 조괄의 어머니 처럼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들이 늘어야만 다음 세기 변방국가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너나 할것 없이 명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