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지에서 농업분야를 취재하던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일본농업계 주위를 맴도는 팽팽한 긴장감이었다. 농산물수입이 수출을 훨씬 웃도는 무역역조현상에도 안정기를 구가하던 일본의 농업계가 최근들어 바짝 긴장하는 듯한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농민은 물론 농협관계자 등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가진 대화내용을 압축하면 이러한 긴장감의 근원은 바로 “한국농산물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농업계의 고민은 가격과 품질에서 한국산에 경쟁력을 빼앗겨 설땅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에서 시작된다. 일본인 특유의 엄살로 볼 수도 있지만 중국산의 경우 값은 싸지만 품질에서 크게 뒤져 일본시장에서 푸대접을 받고있어 크게 우려하는 눈치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산 농산물은 현재 수입물량은 크지않지만 언젠가는 가격과 품질을 내세워 시장잠식을 할 것이라는 가능성으로 잔뜩 겁(?)부터 먹는 등 일본농업계로서는 경계대상이 된지 오래라는 것이다.
특히 경상남도 지역에서 재배되는 한국산 농산물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예사롭지 않다. 농산물 유통업계의 바이어들이 연일 한국행을 서두르는 일이 최근들어 부쩍 늘어나 더욱 주눅들고 있다.
한국산 고춧가루와 김치, 딸기, 방울토마토, 복숭아, 배 등 과수류와 신선채소류를 비롯 한국산 농산물이 속속 일본시장에 상륙하면서 소비자들이 크게 반색하고있는 분위기가 갈수록 심화되기 때문이다.
일본 신주쿠 번화가에 자리한 농협중앙회 동경지사를 방문했을때 일본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한국김치 관련기사가 마침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농협김치가 일본 기무치 아성을 허물고 자위대는 물론 전국농업협동조합연합회(전농)까지 납품될 만큼 속속들이 들어오고 있다. 일본의 최대 쇼핑몰인 라크텐(樂天)시장과 최고급 백화점인 미쓰코시에 이어 우체국 통신판매 품목으로도 등록된 데 이어 일본국제전화회사(KDDI)에도 납품되고 있다”고 현지언론은 경악하고 있다.
기무치 상표로 세계시장 진출기회를 엿보던 일본으로서는 뼈아픈 뉴스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농협동경지소장 全相浩씨(50)는 “일본에서는 브랜화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한국 농산물이 일본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가격과 품질은 물론이고 이를 브랜드화 하는 노력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산 고춧가루에 대한 얘기는 더욱 흥미를 끈다. 가이드를 통해 만난 유학생 유성준씨(33)는 “한국산 고춧가루에 다이어트 성분이 있다고 소문나면서 여대생 대부분이 핸드백에 고춧가루를 넣고 다닌다”며 “미인이 되려면 되도록 많이 먹어야한다는 말까지 돌고있어 한국으로서는 고춧가루를 수출주력품목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경남 신선채소 이외에도 최근에는 전남 진도산 농산물도 일본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등 우리 농산물이 수출물꼬를 계속트고 있다. 진도농협의 방울토마토와 밤호박, 양배추 등의 농산물이 국내시세보다 3배나 높은 가격으로 들어가고 있어 일본농업계는 한층 더 긴장하고 있다.
이러한 대일수출에 아직 문제는 많다. 대표적인 것이 브랜드화가 제대로 진척되지않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농산물을 일본에 상륙시키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확고한 브랜드로 파고들지 않는다면 뿌리를 내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 상륙하는 우리농산물 대부분이 농협마크를 달고있다. 일본의 젊은 층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고춧가루도 농협이란 브랜드 덕을 톡톡이 보고있다. 이는 결코 신뢰없는 상품이 통하지 않는 일본 유통업계의 특징과 우리의 과제가 뭔지를 보여준다. 속박이(겉과 속이 다른 포장) 등 우리 농산물유통의 고질적인 문제의 개선이 없다면 수출에 대한 희망도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농협 등 우리의 브랜드 농산물이 서서히 일본시장에서 확고한 브랜드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더 이상 우리가 들어가기 어려운 시장이 아니다. 속박이와 같은 불건전한 농심과 시작과 끝이 다른 비신뢰적인 수출관행을 버리고 규격화, 품질보증 등 고급 브랜드전략으로 나아간다면 일본은 언제든지 활짝 열 수 있는 시장이다./沈載祜기자·sjh@kyeongin.com
일본시리즈-일본농업의 조바심
입력 2001-02-05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1-02-05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
투표진행중 2024-11-17 종료
법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벌금 100만원 이상의 유죄가 최종 확정된다면 국회의원직을 잃고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됩니다. 법원 판결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