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간의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에서 분단 55년의 벽을 뛰어넘는 새로운 관계가 수립됨에 따라 대북 관련법률인 국가보안법의 장래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그동안 북한측이 꾸준히 철폐를 요구해왔고, 국내에서도 인권침해소지 등을 들어 개폐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 민주노동당, 경실련 통일협회 등 진보정당과 사회단체들은 15일 일제히 성명을 내고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가로막는 법의 개.폐를 서둘러야 한다"며보안법 개폐문제의 공론화를 시도하고 나섰다.

그러나 지난해 15대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개정안 제출을 검토했던 민주당은 일단 여론의 분위기를 주시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정동영(鄭東泳) 대변인은 이날 보안법 개정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언론이 너무 앞질러 가지 말라"고 주문했으며, 정책위원회 핵심관계자도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추진할 민감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앞서 김 대통령도 14일 북한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국가보안법이 교류.협력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말하자 "남북간에 많은 대화를 통해 이견이 있는 부분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민주당의 이같은 신중한 입장은 섣불리 보안법 개정작업에 나설 경우 국론분열로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가 희석되는 등 부작용이 뒤따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때문으로 관측된다.
민주당은 지난해 ▲반국가단체 개념(2조)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7조) ▲ 불고지죄(10조) 등 보안법의 주요 내용을 손질하는 개정안을 마련, 자민련측과 조율하던 과정에서 법안 제출을 유보한 바 있다.

그렇지만 민주당은 남과 북의 정상이 남북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공동선언문에 합의한데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예상되는 등 상황이 급변한 만큼 적절한 시점을 택해 보안법 개정 작업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민주당은 남북한의 정상회담 후속조치 이행 상황, 국민정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정치권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단계적 수순을 밟아 손질작업에 나서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한나라당과 '보수정당'을 표방하고 있는 자민련은 "보안법 문제는 남북한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접근해야 한다"며 개정시에도 불고지죄(10조) 등 일부 조항에 국한돼야 하며 반국가단체의 개념(2조) 등 보안법의 골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은 "보안법의 큰틀을 손질하는 것에는 반대하며 개정도 상호주의에 따라 북한과 맞교환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면서 '남북한상호주의, 보안법 부분개정'이라는 명백한 선을 그어놓았다.

자민련 김학원(金學元) 대변인도 "근본적으로 상호주의 입장에서 같이 완화돼야한다"면서 "우리만 무장해제할 수 없는 만큼 북한도 노동당 강령이나 규칙 등 관련법안을 함께 손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리에 마치고 귀국한 이날은 서해교전이 발발한지 1주년이 되는 날이어서, 지난 1년간 이뤄진 남북관계의 변화 정도를 실감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