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두 정상은 15일 발표한 남북 공동선언에서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원칙을 거듭 확인하면서 통일 방안으로는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갖고 있는 공통성을 살려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공동선언에 나타난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라는 용어는 외부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생소한 북한식 표현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용어는 '느슨한 연방제'라는 조금은 덜 낯선 말로 대치할 수 있다.
북한이 말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지난 91년 1월 1일 김일성 주석의 신년사에 잘 나타나 있다.

김 주석은 "현시기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는 조국 통일방도를 확정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북과 남이 서로 다른 제도를 하나의 제도로 만드는 문제는 앞으로 천천히 순탄하게 풀어나가도록 후대들에게 맡겨도 되지만 사
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의 민족으로서 하나의 통일국가를 세우는 일은 이제 더는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주석의 이같은 언명은 완전한 통일국가 수립을 목표로 했던 원래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이하 고려민주연방제)이 변화됐음을 보인 것이다.
지난 80년 제6차 노동당대회에서 확정된 원래의 고려민주연방제는 하나의 체제와 제도로 통일된 국가 수립을 목표로 했지만 91년 신년사에서는 '제도 통일'은 뒤로 미루고 당장은 통일 국가를 세우자고 강조했다.

어떤 방식으로 당장 통일국가를 세운다는 것인지 언뜻 이해되지 않지만 북측 논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현재 남북 양측의 체제를 그대로 둔 채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라는 '모자'만 씌우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주석은 신년사에서 "북과 남이 서로 다른 두 제도가 존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조국통일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우지 않는 원칙에서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에 기초한 연방제 방식으로 실현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김 주석이 91년 신년사에서 밝힌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연방제 통일방식이 현재 북측이 말하고 있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연방(federation)은 같은 이념과 체제를 바탕으로 세워지는데 비해 김 주석이 말하고 있는 '상이한 체제를 인정하는 연방'이란 '국가연합'(confederation), 또는 '느슨한 연방'으로 분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고려민주연
방제를 영문으로 표기할 때는 'confederation'을 쓰고 있다.

김 주석은 또 "우리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보다 쉽게 이루기 위해 잠정적으로는 연방공화국의 지역적 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장차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더욱더 높여 나가는 방향에서 연방제 통일을 점차적으로 완성하는 문제도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의 중앙정부는 남북 평화공존의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며 지역정부, 즉 기존의 남북한 정부가 군사.외교권까지 보유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 역시 91년 고려민주연방제가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같은 북측 제의가 남측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당시 북측이 내건 전제조건에 상당 부분 원인이 있었다. 북측은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기, 북.미 평화협정 체결 등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해 남측으로부터 커다란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정세는 고려민주연방제가 처음 제의됐을 때와는 크게 달라진 상황이다. 주한미군의 위상을 재정립할 것을 요구하는 여론이 점차 확산되고 있고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해지고 있으며 국
내외적으로 북한과 미국.일본과의 관계정상화를 지원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남북 간 평화공존을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고 평화공존의 보장책으로 우선 고려민주공화국이라는 '모자'를 씌우자는 것인 만큼 남측이 통일 과도기 단계에서 설정한 '남북 연합'과 사실상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또 이 통일방안이 사회주의권의 급격한 쇠퇴현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의 존립이 위협당하던 때에 나온 방어적 통일방안이라는 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