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평양 첫발
13일 새벽은 평양을 간다는 설레임에 잠을 설쳐 피곤했다. 그런데 왠일인지 서울공항에서 전세기에 오르는 순간 눈동자가 더욱 또렸해졌다. 전세기가 인천항 상공을 지나 백령도를 거쳐 불과 1시간만에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는 동안 내내 비행기창밖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구름에 가려 어디를 지나는지 분간할 수는 없었지만 벅찬 가슴을 억제한채 시계와 창밖을 연실 주시해야 했다. 그런 모습은 비행기에 탑승한 방북단 모두가 그러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기장이 안내방송을 통해 ൒초후면 38도선을 넘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기내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곧이어 나지막한 동산, 흙길 도로, 하천 등 북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논에선 모내기를 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고 일부 주민들은 일손을 멈추고 우리가 탄 비행기를 쳐다보기도 했다. 누군가 「남쪽과 다른게 없네」라는 말을 내뱃었다. 순간 기자는 점점 가슴이 뭉클해지고 코 끝이 찡해왔다. 메모를 해야하겠다는 생각도 잊은채 멍하니 창밖의 북녁땅을 주시하고 있었다.

정신을 가담듬은 시간은 정확히 오전 10시 12분. 비행기는 평양 순안공항에 사분히 내려 앉았다.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접한 북한 주민은 「안내원」이었다. 카메라를 커내 셧터를 눌르려는 순간 어떻게 알았는지 "경인일보 김은환기자입네까"라며 한 안내원이 다가왔다. 안내원은 공동취재단을 비롯해 남측대표단 전원에게 각각 1명씩 배정됐다. 그들은 먼저 "평양 방문을 환영합네다. 잘 부탁합네다"라며 인사말을 건넸다.

곧이어 金大中대통령을 태운 전용기가 도착했고 공항환영행사가 이어졌다. 행사를 마친 차량행렬은 오전 10시50분 순안공항을 떠나 20분만인 11시10분께 평양시 입구인 연못동에 도착해 잠시 정차했다. 金대통령과 金正日위원장은 이 곳에서 잠시 차에서 내려 환영나온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했으며, 악수를 하기도 했다. 도로변을 꽉메운 평양시민들이 진홍색과 분홍색 조화(꽃술)을 흔드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잘 알아들 수 없는 소리로 연실 소리를 질러댔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만세」 「김정일 결사 옹위」라고 설명했다. 그들중에는 우리 일행에서 눈을 떼지 않기위해 차가 진행하는 방향을 눈을 돌리려고 애쓰는 이도 있었고 어떤이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너무 조직적인 같아 섬짓하기도 했지만 내가 손을 흔들면 웃음을 띠며 손을 흔드는 모습은 금새 우리 동포들의 모습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자들의 경우 양복을 입거나 셔츠에 넥타이를 맨 차림이었고 여자들은 대개 한복을 입고 있었다. 흰색 저고리와 검정색 치마를 입은 학생들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띄었다.

차량행렬은 연못동에서 4.25 문화회관까지의 「용 거리」, 전승기념관까지의 「비파거리」, 보통강 강안도로, 보통문, 만수대의사당, 옥류교, 만수대 언덕, 개선문 거리, 종로거리, 김일성종합대학까지 평양의 주요거리를 10여㎞정도 순회했다. 환영인파는 단 한곳도 빠짐없이 연도를 메우고 있었다. 연도 중간중간에는 학생들로 구성된 악대가 나와 행진곡 등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한껏 돋우기도 했다.

곧이어 기자들을 태운 차량은 숙소인 고려호텔로 향했으며 집이나 직장으로 되돌아가는 평양시민들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반가운 표정으로 꽃이나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구호는 외치지 않았다. 고려호텔은 매우 깨끗한 편이었다. 편의시설도 일명 가라오케를 비롯해 수영장, 안마소까지 갖춘 45층 규모의 고급호텔이었다. 안내를 맡은 안내원들은 객실이 2개동에 500개를 갖췄다고 설명하는 등 매우 친절했다. 처음에는 우리를 감시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정감이 갔다. 그들은 기자와 통일과 민족문제 등에 대해 논쟁을 걸어오지도 않았고 취재활동을 방해하지도 않았다. 다만 호텔밖의 이탈만은 철저히 통제했다. 코앞에 보이는 평양역에 가서 기념사진만을 찍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더욱이 호텔앞에 있는 식당에 가서 단고기라도 먹자고 해도 단고기는 부위별로 먹는 고기이기때문에 사전 주문을 해야 한다며 둘러댔다. 난생처음 본 평양의 첫 인상은 넓고 깨끗한 우리의 중소도시 같았다. 차도 별로 없고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예전에 TV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의 일원으로서의 평양일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金銀煥기자·ehkim@kyeo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