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선에서 참패를 당한 한나라당이 시간이 지나면서 당 지도부 문책론은 오간데 없고 당 대표 직할체제로 권한을 강화하는 방식의 당 쇄신론을 꺼내면서 물타기 시도라는 지적이다. 4·29 재보선에서 '6패'의 쓰라린 아픔을 경험한 당 지도부가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쫓아 당 쇄신에 나서기 보다 자신들의 입지를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당내 계파문제를 한방에 해결할 묘책이 없다는 점에서 시간 벌기로 해석된다.
안경률 사무총장이 선거 패배 후 스스로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당 대표와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는 아직까지 누구하나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책임지라는 사람도 없다. 이런 가운데 당지도부와 대다수 소속 의원들은 5월 중에 대규모 해외 출장을 떠날 예정이어서 선거 책임론 공방은 '시간 가기만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 중심 못 잡는 당 지도부=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재보선 책임론에 대한 당 지도부의 명확한 입장이 정리될 것으로 예견됐다. 그러나 회의를 시작하면서 방향은 지도부 문책이 아닌 엉뚱한 화두로 번졌다. 당 대표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원내대표-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 제도를 폐지하고, 당 대표가 정책위의장을 임명하는 방향으로 당규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정몽준 최고위원이 총대를 멨고, 박희태 대표와 다른 최고위원들은 "민주당도 정책위의장은 대표가 지명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이에 한 의원은 "책임론은 사라졌고 당 대표 권한 강화를 통한 시스템 변화를 화두로 올린 것"이라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는 당 지도부의 영악함이 돋보인다"고 촌평했다.
그러나 당내 의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한 의원은 "원내 정당화가 자리잡고 있는 마당에 정책위 의장을 임명하려는 것은 국회를 장악하려는 불순한 의도이며 정치적 퇴보"라는 반응을 보였다.
최근 당 지도부가 금산분리 완화법(은행법·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시도하려다 일부 의원들로부터 '국회가 통법부냐'는 반발을 산지 사흘만이다.
원내대표 경선이 당장 21일로 예정돼 있는데 '경선룰'을 바꾸려 한 것도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지적이다.
■ 말뿐인 당 쇄신론=박희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 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재보선에 나타난 민심은 우리에게 쇄신과 단합을 하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심을 겸허히 수용해 경제 살리기에 전력을 쏟겠다"며 당 쇄신론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재보선 이후 당내에는 '친이계'는 울상이고, '친박계'는 소리 없는 미소를 짓는 등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로 당쇄신위는 구성조차 되지 않고 지리멸렬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박희태 대표는 오는 18일 10일 일정으로 뉴질랜드와 호주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
당쇄신을 주장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는 홍준표 원내대표도 6일부터 장기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외유에 나선다. 허태열·송광호·박순자 최고위원과 대다수 의원이 조만간 줄줄이 출국한다. 당의 한 관계자는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모두 해외에 나가 있는데 무슨 쇄신이냐"며 불만이다.
당 지도부의 책임론이 지지부진하자 초선 개혁 의원 모임인 '민본21'이 나섰다. 이들은 4일 이명박 대통령과 당 지도부에게 ▲국정기조의 쇄신 ▲당·정·청 인적 개편 ▲당 화합 등 3대 개혁과제를 제시했으나 약발이 크게 먹히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