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궁평항 해안 일원에 경계초소와 철조망이 흉물화되고 있다. 초소는 출입문이 잠겨 있는 가운데 개방감시창과 초소 벽면을 통해 고속지령대 보고 요령 등 초병 수칙과, 주 감사구역 지점·거리 등 군사계획이 그대로 보이는 모양이다. 제기능을 상실한 녹슨 철조망도 훼손된 채 방치돼 있어 행락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곳의 경계초소와 철조망은 폐쇄·철거되는 것이 맞다. 화성시와 3군 사령부가 지난해 5월 관·군 고위급 협의체에서 화성·시화방조제 주변 34.6㎞ 구간의 경계철책선과 97개동의 폐경계 초소를 모두 철거키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군경계 철책의 기능이 상실된 지역에서 도시미관만을 저해하고 있어 집단민원의 대상이 돼 왔다는 게 그 이유다. 철거와 폐쇄가 어느 한 측의 일방적인 의견이 아닌, 합의된 것이라면 화성시와 3군 사령부가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군측은 궁평항 인근은 군사시설 제거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철거할 수 없고, 나머지 철거에 합의한 시설들에 대해서는 화성시가 시설을 철거해주기로 협의됐으나 시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 아마도 철거 대상과 범주, 철거주체에 대해 군과 시측이 혼선을 빚고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궁평항 인근 군사시설들이 주민편익보다 안보의 비중이 크다면 존치하는 것이 맞고, 안보보다 주민편익을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더 많다면 철거 또는 정비하면 된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에서 안보냐, 주민 편익이냐를 따질 계제는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관과 군이 이미 어렵사리 합의를 해 놓고 '철거의 범주가 어디까지이냐', '철거 주체가 누구이냐'를 따지는 것은 양 기관 모두 책임을 떠넘기며 각자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으로 모양새가 좋지 않다.

도시미관을 해치더라도 안보상 중요할 경우 철거를 집단적으로 요구할 만큼 주민들이 우매하지 않다. 또 존치가 필요없는 시설이 도시미관을 해치며 방치되는 것에 대해 무관심할 정도로 주민들이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시와 군측은 조속히 회동해 지난해 협의사항을 재점검하고 서로의 역할을 확인, 이행의 수순을 밟아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