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전상천기자]지역언론은 지방정부를 감시·견제하며 지역여론의 대변자로서, 민주주의의 '파수꾼'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한 개정 신문법은 중앙 메이저 신문 등에 지역 일간지 인수를 허용했다. 가뜩이나 자본경쟁력이 취약한 지역언론은 흡수 통폐합될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특히 자본력을 앞세운 복합 미디어재벌의 출현으로 지역언론의 '지역성'과 '다양성'은 앞으로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특정 미디어그룹이 같은 내용을 다른 매체에 동시에 게재하는 여론 독과점은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 정부가 지역언론 활성화를 위한 지원책을 통해 여론의 다양성을 회복하고 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메이저신문의 지역신문 장악'=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한 신문법은 신문과 뉴스통신사, 방송사의 지배주주가 다른 일간신문의 지분을 50% 이상 소유할 수 없도록 금지했던 조항(15조 3항)을 철폐하는 것을 담고 있다.

중앙 메이저 신문사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지역신문 등을 무차별적으로 인수, 지역시장에 진출이 가능하게 됐다.

지역언론의 중앙매체에 대한 종속은 필수적으로 지역의제를 축소시키고 지역사회의 균형있는 발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사라지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는 미국의 지역언론 붕괴 사례를 비춰볼 때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미국은 지난 1996년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을 통해 거대 미디어기업 언론사의 소유제한을 대폭 완화한 이후 지역신문은 대거 소수 미디어그룹에 의해 장악됐다. 지역신문을 장악한 미디어재벌은 신문기자를 해고하는 경영합리화를 내세워 기존 지역신문 기자를 해고하고, 최소 인력만으로 신문사를 운영, 내용의 질 하락이 불가피하다. 특히 거대 미디어 그룹이 같은 내용의 기사를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다른 여러 신문에 동시에 게재, 여론 독과점이 형성된다.

이로 인해 지역현안과 이슈에 대한 보도가 축소되고 거대 미디어기업의 이익에 부합한 소수의견만 제공됨으로써 여론의 왜곡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립대 최진봉 저널리즘 스쿨교수는 "미국정부의 신문방송 겸영허용과 미디어 소유를 제한하는 규제의 폐지는 결국 지역언론의 역할과 가치의 몰락을 불러왔다"며 "문제는 이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라는 지적은 되새길 필요가 크다.

■ '지역언론을 살리자'=정부와 여당은 최근까지 신문고시 폐지와 신문방송 겸영·소유 무차별 허용, 민영 미디어랩, ABC제도, 독임제 신문지원기구 등의 언론개혁(?) 정책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이 같은 언론정책은 메이저 신문사들의 이익은 전적으로 반영한 반면, 지방신문은 고사시킬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때문에 언론의 다양성과 지역성을 파괴하는 미디어법은 폐기가 최선이다. 다시 원점에서 재논의하거나 적어도 영국의 '머독 방지법' 등 전국신문 및 방송에 대해 겸영이나 복수소유를 허용하더라도 지역언론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정한 선에서 엄격히 규제하거나 지역언론에 우선권을 주는 실효성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OECD 전체 30개 회원국 중 어느 곳도 이번에 강행처리된 미디어법처럼 무제한의 소유겸영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가 없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일본의 '활자 문화 진흥법', 미국 '신문회생법' 등 직·간접적인 신문지원에 나선 서구 선진국들이 여론다양성 확보 측면에서 대부분 시장지배적 신문이나 전국지를 제외한 중소 및 지역신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지역언론의 건전한 육성' 차원에서 지난 2005년 여야 합의로 제정된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은 경영구조가 취약한 지방언론사의 경영 개선과 뉴스 콘텐츠 강화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내년 2월 소멸을 앞두고 개정안이 5개월 넘게 국회에서 계류되면서 존폐기로에 서 있다.

대다수 언론학자들은 "최소한의 기간연장 및 기금확대와 지역신문지원기관의 독립을 통한 지원강화가 미디어법 무효와 더불어 위기의 지역언론을 살리는 방안"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