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있어 정치적 삶의 터전이었다.

   지난 61년 5대 민의원에 당선된 이후 6선(5,6,7,8,13,14대) 의원을 지낸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라는 일생의 과업을 국회의 장(場)을 통해 달성하고자 한 철저한 의회주의자였다.

   4수 끝에 15대 대통령에 당선된 김 전 대통령은 98년 2월 국회 앞마당에서 대통령 취임선서를 함으로써 수평적 정권교체의 첫발을 내딛는 동시에 의회 민주주의 완성시대를 열었다.

   특히 사후(死後)로 가는 마지막 길을 국회로 택함으로써 의회주의 신봉자로서의 삶을 마감한다. 지난해 2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 국회를 찾았던 김 전 대통령은 20일 1년반만에 다시 국회를 찾게 됐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국회는 민주주의의 상징이고 미래의 전당"이라며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의회주의를 위해 많은 공적을 남겼다"며 국회를 빈소 및 영결식 장소로 선택한 배경을 설명했다.

   ◇철저한 의회주의자 = 61년 치러진 5대 민의원 보선에서 생애 첫 금배지를 달았다. 3수 끝의 국회 입성이었지만, 당선 사흘뒤 5.16 쿠데타로 의원선서도 하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6대 의원 때부터다. 정치적 본산인 목포에서 당선된 김 전 대통령은 6대 국회 초반 6개월간 13차례나 본회의 발언을 함으로써 `달변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특히 64년 당시 김준연 의원의 구속동의안 처리시 본회의장에서 5시간19분 동안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한 것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유명한 일화다.

   이후 갖가지 정치적 변곡점에서 김 전 대통령은 국회를 통한 해결에 우선순위를 뒀다. 오랜 야당 지도자로서 숱한 장외투쟁을 해왔지만, `원내외 병행투쟁'이 소신이었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신군부의 집권 계기가 된 12.12 사태에 대한 투쟁 노선을 놓고 야권내 이견이 격화됐던 94년 당시 민주당 이기택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등원을 촉구, 정면충돌한 것은 지금도 정치권에서 회자된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이끌었을 때도 국회 복귀를 훈수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해 6월초 민주당 원내대표단이 예방한 자리에서 "국회의원은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 원내에서 싸우라고 국민이 뽑아준 것이다"며 "수십년 나의 경험과 의회주의 원칙을 보더라도 국회는 오래 비우지 않는 게 좋다"며 민주당의 등원을 조언했었다.

   나아가 김 전 대통령은 "야당을 하면서 원내에 등원하지 않고 성공한 적이 없다"며 "3선 개헌에 앞서 나는 `국회로 들어가 개헌을 저지하자'고 했는데 유진오 박사 등이 반대해 계속 밖에서 싸웠고, 아무런 성과를 못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형오 국회의장은 "김 전 대통령은 6선 의원 출신으로서 의회주의자이시고 평생을 국회에서 활동하신 분"이라며 "고인의 뜻을 받들어 우리 국회도 의회민주주의 절차가 존중되고 성숙한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민주의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김 전 대통령은 평생 정치의 중심 무대는 국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철저한 의회주의자"라고 전했다.

   ◇정치권, DJ에 대한 추억 = 한국 현대사의 거목(巨木)이었던 만큼 여야 구분없이 현역 정치인과 김 전 대통령의 접촉면은 넓었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회고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현재 여야의 중진이자 핵심이 된 정치인들은 김 전 대통령과 자신만이 간직하는 추억이 하나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권 인사들은 한결같이 김 전 대통령을 `어버이와 같은 분'(정세균 대표), `정치적 사부'(정동영 의원), `정치적 아버지'(이강래 의원) 등의 표현으로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대립각을 세워온 현 여권 인사들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회상에 젖어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한나라당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두번째 감옥에 갔을 때 고문을 많이 당했는데, 석방 후 동교동에 인사를 하러 갔더니 (김 전 대통령이) 웅담을 하나 주며 `고문에는 웅담이 좋으니 자기 전에 먹고 자라'고 했다"며 "저녁마다 웅담을 먹은 덕분에 빨리 회복됐다"고 회고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95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할 당시 김 전 대통령과의 연을 떠올렸다.

   안 원내대표는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저는 권노갑씨로부터 입당을 권유받았고 초대를 받아 동교동 자택에서 김 전 대통령과 오찬을 했었다"며 "당시 송파병을 제의받았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당시 나를 국민회의에 입당시키려고 자택에 초대해주신 그분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아직까지 전하지 못한 게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인 정몽준 최고위원도 "외환위기로 정부 내에서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을 짓지 말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김 전 대통령이 고민 끝에 경기장 건립을 허락했다"며 "김 전 대통령의 현명한 판단이 없었다면 2002년 월드컵은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대표적인 상도동계 인사인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 역시 "젊은 시절 머리가 하얀 저를 보고 김 전 대통령은 `정치라는 게 인기 직업인데 젊은 사람이 머리가 너무 희면 안돼. 염색을 해'라고 말씀을 해줬다"며 "너무도 인간적인 분"이라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