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현행 고용보험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손질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서 논란이 벌어질 전망이다. 재계는 사업주가 근로자보다 3배나 많은 보
험료(1000명이상 사업장 기준)를 내고 있지만 평가와 지출에 권한이 없다
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재계는 실업자 수가 줄어 고용보험기금이 넉넉해지자 정부와 정치권
이 본래 용도가 아닌 곳에 돈을 써 이 기금이 쌈짓돈 으로 변질되고 있다
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고용보험 누적 적립금은 95년말 3351억원에서 작
년말에는 3조6330억원으로 급증했다.
▽재계의 문제 제기= 경영자총협회는 고용보험 보험료의 상당 부분을 사업
주가 내고 있지만 세부 지출내역과 그 평가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보험료 수준이 적정한 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근
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총은 11월부터 출산휴가를 가는 여성근로자의 한달분(30일) 급여를 고용
보험에서 주는 것을 대표적 문제로 꼽았다. 출산휴가는 실업이 아닌데 실업
급여를 지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내년에 2000억원이 출
산휴가 급여로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기업들이 인력을 감축하지 않을 때 주는 고용안정지원
금도 제대로 사용되지 않아 돈이 쌓이고 있다. 고용안정지원금은 기업들이
인력 감축을 미루라는 뜻으로 해석돼 구조조정 취지와도 어긋난다는 지적
도 나온다.
경총 이호성(李浩盛)고용복지팀장은 재계가 여성근로자의 모성보호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고용보험을 원칙에 맞게 운영하자는 것 이라며 폐쇄적
으로 운영하다보니 엉뚱한 지출항목이 비집고 들어왔다 고 말했다.
▽재계의 대안과 정부 입장= 경총은 재계와 노동계 등이 함께 참여하는 위
원회를 구성해 운영시스템을 관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행 시스템에 부
족한 평가와 감시체계를 갖추자는 것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도 노사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위원회는 경제상황에 맞는 실업자 수를 추산해 실업급여 적립금 규모를 합
리적으로 정하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재계는 2003년부터 일용직 건
설노동자도 고용보험에 가입하게 되면 재정악화와 도덕적해이(모럴 해저드)
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적립금이 쌓이는 고용안정사업의 보험료율을 현행 0.3%
에서 0.2%로 0.1%포인트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 이라고 밝혔다. 이 경우 재
계는 모두 1500억원(작년 기준)의 보험료를 덜 낼 수 있다.
노동부 노민기(盧民基)고용총괄심의관은 출산휴가 급여를 실업급여에서 지
출하는 것은 우리도 반대했던 방안이었다 면서도 현재 실업급여와 능력개발
사업은 보험료율이 적정한 수준으로 본다 고 말해 재계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 고용보험 이란?= 95년 7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를 겪으면서 사회안전망 재원으로 활용됐다. 실업급여와 고용안정 능력개
발 등 3가지 사업을 시행한다. 실업급여 보험료는 사업주와 근로자가 50%
씩 부담하고 나머지 보험료는 사업주만 낸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