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지방자치를 일컬어 풀뿌리 민주주의라 한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선출직이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만,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은 해당 지역 국민들의 민의와 이익을 가장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대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는 그 단위가 작을수록 제도와 인적 구성의 건강성이 담보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지역의 국민의 피해가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발생해서다.

하지만 행정안전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건강해야 할 풀뿌리가 심각하게 썩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의 지방의원 중 광역의원 71명, 기초의원 155명 등 226명이 지난 3년간 각종 비리 혐의로 처벌됐다는 것이다. 광역의원은 10명 중 1명, 기초의원은 20명에 1명 꼴이다. 범죄 유형별로는 선거법 위반이 169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도로교통법 위반과 같은 기초질서 위반부터 뇌물, 사기 등 파렴치 범죄를 망라하고 있다. 경기도에선 광역·기초의원을 합해 24명, 인천에선 9명이 처벌받았다. 경기도의 경우 전원이 선거법 위반이었다.

우리 사회에 내재된 문제와 모순을 경제의 압축성장과 민주화의 압축실현 탓으로 돌리는 분석이 있다. 주민등록법 위반, 즉 위장전입이 재테크와 자녀교육의 유효한 경쟁수단으로 여겨져 범법이 아닌 관행으로 묵인된 시절이, 지금에 와선 국무위원 내정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방자치도 마찬가지다. 중앙권력의 지방이양과 국민의 정치참여 보장을 명분으로 도입됐지만, 지방자치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나 정치인들의 자질은 지금껏 제도의 명분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급기야는 열에 하나가 범법자로 처벌받는 조직으로 전락한 지방의회의 실정이 한국 지방자치의 현주소가 됐다. 단체장들이라고 해서 지방의원들과 다르지 않다.

1995년 4대동시 선거를 치르면서 지방자치시대를 개막한 이후 지방자치는 풀뿌리와는 거리가 멀게 기형적으로 성장해 왔다. 무보수 명예직에 가깝던 지방의원들은 고액 연봉자들로 변질됐고, 정당공천의 폐해로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계열화, 예속화된지 오래다. 지방의원 범법 현황은 한국지방자치의 총체적 문제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지방자치 개혁을 위한 실제적인 성찰과 행동이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