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자민련의 교섭단체 문제가 걸린 국회법 개정에 완강히 반대하던 당론을 변경, 협상의 여지를 보이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회파행 사태까지 몰고온 국회법 개정과 관련, 그간 "교섭단체 요건완화는 원칙의 문제이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며 소관상임위인 운영위에 안건상정 자체를 실력저지해 올 만큼 완강한 거부 입장이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25일 본회의장 점거와 국회의장단 '가택연금' 등으로 일단국회법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저지에 성공하면서 당론변경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정창화(鄭昌和) 총무는 26일 총재단 회의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국회법강행처리를 사과하고, 적법절차를 밟지 않은 날치기 처리에 대해 원천무효를 선언하면 그동안 상정자체를 반대해 온 국회법의 심의, 협의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정 총무는 비록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국회법 '협상불가'라는 종전의 입장에서 크게 선회한 것이어서 오히려 당론변경의 시점과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먼저 한나라당의 당론변경 조짐은 이미 여야대치로 인한 국회파행 이전부터 가닥이 잡혔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관측은 지난 주말 이회창(李會昌) 총재와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간 회동에서 두 사람이 15분간 독대했고, 여기서 교섭단체 완화요건을 현행 20석에서 17석으로 완화하기로 교감이 이뤄졌다는 데 뿌리를 두고 있다.

두 사람간의 이런 '이면합의설'이 사실이라면 한나라당은 국회법 개정에 암묵적으로 동의해 놓고도, 겉으로는 국회법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를 실력저지하는 이중플레이를 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법대로, 원칙대로'를 주장해 온 이회창 총재에게 국회파행의 화살이 집중되는 사태가 벌어져 이 총재에게 정치적으로 적잖은 부담을 안겨줄 것이 자명하다.

이런 부담까지 감수하면서 한나라당이 당론변경 가능성을 흘리고 있는 것은 국회법 개정에 협조함으로써 자민련을 '우군화'하는 여지를 마련함과 동시에 자칫 '교섭단체 10석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는 사태가 현실화하면 한나라당의 분열 등 엄청난'후폭풍'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이 총재는 26일 총재단 회의에서 "밀약설이 나오고 있는 때에 그런 얘기를 왜 했느냐"고 정 총무를 꾸짖었고, 이어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의원들이 정 총무를 겨냥,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결국 정 총무도 "솔직히 말해 현실 앞에 답답해서 한발짝 앞서 나갔다"면서 "반성하겠으니 용서해 주면 백번이라도 사과하겠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 총재는 정가에 떠돌고 있는 '밀약설'에 대해 "절대 그런 일은 없었으니 안심하기 바란다"며 여러차례 강조하는 것으로 이날 밀약설 논란을 봉합했다.

이 때문에 당내 일각에서는 정 총무의 언급은 다분히 여론살피기를 위한 '애드벌룬'이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반대의견이 많으면 걷어들이고, 묵시적 동의가 이뤄지면 밀고 나가기 위해 복선을 깐 전략적인 발언이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원내사령탑인 정 총무가 여론을 떠보기 위해 이 총재와 주파수를 맞추지않은채 자신의 사견을 얘기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어 정 총무가 당론발설의'타이밍'을 오판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