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유한 사자성어로 `旁岐曲逕(방기곡경)'이 선정됐다.

   교수신문은 전국 각 대학 교수,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 지식인 216명을 대상으로 8~14일 설문조사를 한 결과 올해의 사자성어로 `旁岐曲逕'이 뽑혔다고 20일 밝혔다.

   `旁岐曲逕'(곁 방, 갈림길 기, 굽을 곡, 지름길 경)이란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 길이 아닌 `샛길과 굽은 길'을 이르는 말이다.

   바른길을 좇아서 정당하고 순탄하게 일을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한다는 것을 비유할 때 많이 쓰인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 율곡 이이는 왕도정치의 이상을 다룬 저서 `동호문답'(東湖問答)에서 "제왕이 사리사욕을 채우고 도학을 싫어하거나 직언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구태를 묵수하며 고식적으로 지내거나 외척과 측근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망령되게 시도해 복을 구하려 한다면 소인배들이 그 틈을 타 갖가지 `방기곡경'의 행태를 자행한다"고 지적했다.

   율곡은 또 송강 정철에게 보낸 편지에서 "공론(公論)이 허락하지 않더라도 `방기곡경'을 찾아 억지로 들어가려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도 말한 바 있다.

   `방기곡경'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것은 세종시 수정, 4대강 사업 추진, 미디어법 처리 등 굵직한 정책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타협과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샛길, 굽은 길로 돌아갔음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교수신문은 전했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는 "정치권과 정부가 여러 정치적 갈등을 안고 있는 문제를 국민의 동의 등 정당한 방법을 거치지 않고 독단으로 처리한 행태를 적절히 빗댄 것"이라며 "한국 정치가 바르고 큰길로 복귀하기를 바라는 소망까지 반영된 사자성어"라고 설명했다.
손주경 고려대 교수(불문학)는 "긴 안목으로 국가와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이의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물리적 이익을 취하려다 정신의 풍요로움을 버리지 않았는지를 성찰하지 않았던 해"라고 지적했다.

   설문조사에서는 `방기곡경' 외에 서로 옳음을 주장하지만, 중도를 얻지 못한다는 뜻의 `重剛不中'(중강부중), 소모적인 논쟁을 거듭한다는 의미의 `甲論乙駁'(갑론을박), 가는 세월이 물과 같다는 `逝者如斯'(서자여사), 숯불을 안고 있으면서 서늘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목적과 행동이 다른 경우에 사용하는 `抱炭希凉'(포탄희량) 등도 후보로 제시됐다.

   그 해 사회의 세태를 정곡을 찔러 표현했다는 평가를 듣는 사자성어는 언뜻 보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지만 설명을 들으면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하는 말.

   지난해는 `병이 있는데도 의사한테 보여 치료받기를 꺼린다'는 뜻으로 과실이 있으면서도 남에게 충고받기를 싫어함을 비유한 호질기의(護疾忌醫), 2007년에는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의미로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이는 도덕불감증 세태를 풍자한 자기기인(自欺欺人)이 각각 선정됐다.

   그밖에 ▲2006년 密雲不雨(밀운불우, 구름은 빽빽하지만 비는 오지 않는 상태로, 여건은 조성됐으나 일이 성사되지 않아 답답함과 불만이 폭발 직전인 상황) ▲2005년 上火下澤(상화하택, 위는 불 아래는 연못으로 소모적으로 분열.논쟁하고 갈등하는 현상) ▲2004년 당동벌이(黨同伐異, 같은 무리와 당을 만들어 다른 자를 공격한다는 것으로, 정파나 이해관계에 따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는 양상) 등이었다.

   2003년 우왕좌왕(右往左往), 2002년 이합집산(離合集散), 2001년 오리무중(五里霧中) 등은 비교적 평이한 사자성어로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