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저신용자에게 저금리로 사업자금을 대출해주는 '미소금융'(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1일 미소금융중앙재단에 따르면 이달 안에 기업과 은행이 설립하는 11개 미소금융재단이 모두 출범하며 미소금융중앙재단이 직접 설립하는 지역법인도 연내 대출업무를 개시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미소금융사업이 정부와 기업의 생색내기 혹은 퍼주기 사업으로 변질하지 않으려면 대출심사를 꼼꼼히 하고 대출자가 자활에 성공할 수 있도록 사후관리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세 자영업자 창업자금.운영자금 지원
미소금융 대출상품은 ▲프랜차이즈 창업자금 대출 ▲창업 임차자금 대출 ▲시설개선자금 대출 ▲운영자금 대출 ▲무등록사업자 대출 등 다섯 가지다. 주로 영세 자영업자가 지원대상이며 대출금리는 4.5% 이내로 결정됐다.

   프랜차이즈 창업자금은 이미 시장에서 검증을 받아 성공 가능성이 큰 소규모 업체의 기술과 브랜드 등을 창업희망자가 활용할 때 지원하는 대출이다. 일반적으로 1천만 원 이내 소액대출 위주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5천만 원까지도 대출할 수 있는 상품이다.

   창업임차자금은 영세 자영업자가 안정적인 자립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사업장 임차보증금을 지원하는 상품으로 대출한도는 5천만 원이다.

   운영자금은 제품, 반제품, 재료 등의 구입비를 지원하며, 시설개선자금은 생계형 차량이나 비품집기를 구입할 때 대출이 가능하다. 두 상품의 대출한도는 각각 1천만 원이다.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았거나 등록대상이 아닌 영세 자영업자에게 차량, 비품, 집기 구입비 등을 대출해주는 무등록사업자대출의 대출한도는 500만 원이다.

   미소금융 대출상품의 상환기간은 모두 5년 이내이며, 6개월~1년간 거치기간을 거쳐 원리금을 균등 분할 상환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평균 대출금을 1천만 원, 대출기간을 5년으로 잡으면 앞으로 10년 동안 25만 가구 안팎이 미소금융의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대출자격 엄격..신청자 중 상당수 발길 돌려
미소금융은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운 저신용·저소득층에게 자활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대출자격이 엄격하다.

   우선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인 경우에만 대출신청이 가능하다. 3대 신용평가사인 한국신용정보, 한국신용평가정보, 코리아크레딧뷰로 중 1개사 이상에서 개인신용등급이 7등급 이하면 된다.

   저신용자라도 보유재산이 8천500만 원(대도시는 1억3천500만 원) 이상이면 지원을 받을 수 없고, 보유재산 대비 채무액이 50%를 초과하는 사람도 대출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은행연합회 신용정보전산망에 연체, 대위변제, 부도 등 신용도 판단정보와 국세 및 지방세 체납정보, 파산 등 공공정보가 등재된 사람은 원칙적으로 미소금융을 이용할 수 없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3개월 이상 채무를 연체한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는 원칙적으로 미소금융을 이용할 수 없다"며 "다만, 신용회복지원기관에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신청해 2년 이상 변제금을 성실히 낸 사람은 이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출자격이 엄격하다 보니 대출신청을 하려고 미소금융재단을 방문했다가 바로 발길을 돌리는 신청자들도 상당수 있다.
  
◇"지원효과 높이면서 도덕적해이도 막아야"
보유재산 요건이나 연체기록 등의 미소금융 대출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지적도 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57)는 운영자금을 마련하고자 서울 을지로 미소금융재단 사무실을 방문해 상담을 받은 뒤 신청서를 찢어버리고 그냥 돌아갔다.

   김씨는 "세금을 내지 못해 집이 압류될 처지에 놓여 운영자금이라도 받아볼까 하는 마음에 찾아왔으나 집을 소유하고 있어 대출을 받지 못한다고 하기에 그냥 돌아간다"며 불평했다.

   그러나 미소금융이 '퍼주기 사업'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대출심사를 꼼꼼히 하고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기금이 성공하려면 철저한 대출심사를 통해 자활의지와 상환 능력을 잘 따져서 해야한다"고 말했다. 대출금 회수율이 98%에 이르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처럼 대출자들이 철저한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대 교수는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큰 만큼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예로 멕시코의 유명 시멘트 회사인 세멕스를 들었다. 이 회사는 단순히 시멘트를 파는데 그치지 않고 집이 없는 사람들이 싼값에 벽돌을 사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도와줘 큰 호응을 얻었다.

   권 교수는 "정부가 강제로 대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참여토록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면서 "한국의 기업들도 단순한 대출 뿐아니라 세멕스처럼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앞세워 전문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런 기업에 세제 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주면 참여 기업들도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꼼꼼한 대출심사 등을 거쳐 실업자나 실패한 자영업자들이 이 기금의 도움으로 자활에 성공하고 대출금을 갚는 `모범 사례'들이 계속 나오면 다른 기업에까지 미소금융 사업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