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희(95) 할머니에게 2009년 12월 24일은 생애 최고의 감격적인 크리스마스 이브가 됐다.
이 할머니는 이날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서울시립 영보노인요양원에서 처음으로 발급된 주민등록증을 받아 들고 하염없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가족과 헤어진 뒤 그 충격으로 알코올중독과 약물중독에 빠졌고 이후 모든 기억을 잃은 채 살아왔다.
주민등록증이 없어 장애인 등록과 의료급여, 노인연금 등 각종 사회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 것은 물론 금융거래와 취직 등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웠다. 이 할머니와 함께 이날 주민등록증을 얻은 영보노인요양원 거주 여성은 모두 38명.
대한법률구조공단(이사장·정홍원)은 요양원 등 복지시설에 거주하는 무호적자를 대상으로 '가족관계등록 기획소송 사업'을 벌여 이 할머니 등의 가족관계등록을 완료하고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성(姓)과 본(本)이 없었던 이들은 대부분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자신의 이름은 물론이려니와 언제, 어디서 태어났으며 가족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사회복지시설에만 의지해 살아왔다.
이 할머니 등이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기 위해 부여받은 본(本)은 모두 이들이 거주하는 영보노인요양원의 관할구(區) 명칭을 따 '처인'으로 결정했다.
영보노인요양원 안치석(43) 국장은 "요양원에 거주하는 분들의 최고 소원이 이뤄졌다"며 "앞으로 20여명이 더 주민등록증을 얻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떳떳하게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