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종시의 모델로검토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리서치트라이앵글파크(RTP)는 미국 동부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며 산학협력 클러스터의 대표적 사례로 꼽혀왔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주도인 롤리(Raleigh)와 더럼(Durham) 및 채플힐(Chapel Hill) 등 3개 도시를 연결한 삼각형 구조 내에 위치한 연구개발 중심단지인 RTP는 7천에이커(2천830여만㎡)에 달하는 광활한 부지에 IBM 등 170여개 글로벌 기업의 연구기관이 자리하고 있고, 4만2천여명의 고급인력들이 활동 중이다.
작년 7월 이곳에서 열린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 학술대회 취재 중 집중 견학을 한데 이어 연말 연휴기간에 다시 들른 RTP는 '생활하면서 근무하기 좋은 곳 1위'라는 평가답게 숲으로 둘러싸인 빼어난 경관 속에 세계적 기업과 벤처기업들의 연구소 간판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IBM, 시스코, 모토로라, 노텔 네트워크스, 버라이존, 레노보 등 첨단 정보통신 회사에서 부터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GSK), 머크, 바이오젠, 신젠타 등 제약회사 그리고 소규모 벤처기업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959년 주정부와 기업.산업계, 학계 지도자들이 힘을 합쳐 조성하기 시작한 RTP는 80-90년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고, 작년 50주년을 계기로 오는 2020년에는 서부 실리콘밸리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연구중심 클러스터로 발전한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마련해 추진 중이다.
RTP 관리.개발을 담당하는 리서치 트라이앵글재단의 홍보담당인 캐라 루소는 8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단지 내 직원만 해도 4만2천여명에 달해 노스캐롤라이나전체 고용의 22%, 연구직 고용의 53%를 차지한다"면서 "단지 내 자본투자액이 연간 28억달러, 단지 내 직원들의 급여총액이 27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노스캘롤라이나주 경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50년대까지만 해도 담배와 목화의 주산지로 전형적인 농장지대였던 노스캐롤라이나주가 첨단과학과 바이오 산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된 데는 1959년 200만달러로 4천200에이커의 토지를 구입하면서 시작된 RTP의 기관차 역할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NCSU) 김용백 교수(수의학과)는 "RTP는 이제 노스캐롤라이나주를 대표하는 상징기관으로 발전했다"면서 "롤리와 인근지역이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이겨낼 수 있는 미국내 10대 도시에 포함되는 배경에는 RTP가 있다"고 평가했다.
쾌적한 연구환경은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인 과학자들에게도 유인 요소로 작용해 IBM 정보관리사업부 부사장인 조인희 박사를 비롯해 GSK의 김용호 박사, 농약제조회사 신젠타의 문항식 박사 등 RTP 내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연구원만 100여명 그리고 NCSU의 지청룡(물리학) 교수 등 역내 한국계 교수들도 40-50여명에 달하고 있다.
작년 말 휴대전화 제조업체 소니에릭슨이 RTP내 연구본부를 폐쇄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오히려 이곳 연구소를 중심으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야심찬 프로젝트들을 추진 중이라는게 GSK 김용호 박사의 전언이다. 김 박사는 "GSK의 경우4천여명의 연구직원들이 당뇨병, 에이즈, 암 연구와 신약개발 다양한 연구작업을 추진 중"이라면서 "RTP내 연구소가 필라델피아에 있는 연구소를 제치고 연구본부가 됐을 정도"라고 말했다.
RTP가 성공적인 혁신 클러스터로 발돋움하게 된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있다. NCSU에 머물며 RTP 등 산학 클러스터를 집중 연구 중인 한밭대 최종인 교수는"59년 RTP가 조성된 뒤 초기에는 이곳에 입주하는 기업들이 거의 없었다"면서 "65년IBM과 국립보건원(NIH) 산하 환경보건연구소(NIEHS) 등이 입주하고 이후 환경보호청(EPA),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등이 진출하면서 발전이 본격화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듀크대, 노스캐롤라이나대(UNC), NCSU 등 3개 명문대학들이 의학, 공학, 전자 및 생명공학 분야의 유능한 인재들을 계속 배출하고, 이곳에 진출한 기업 및연구기관들간의 산학연 협동이 유기적으로 이뤄진 점이 가장 큰 성공요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정부가 전자공학센터(MCNC)와 바이오 센터의 설립을 주도하고, 수천만달러의 연구기금 지원 등을 통해 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담당하는 등 리더십을 발휘하는 점 그리고 서부의 실리콘밸리나 동부 제약산업 중심지인 뉴저지 등에 비해 물가와 주거비용이 저렴하고, 롤리시 공원면적이 1천650여만㎡에 달할 정도로 생활환경이 쾌적한 점도 RTP의 발전을 촉진하는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됐다.
최 교수는 정부가 추진 중인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 "RTP의 성공사례를 통해 분석해 보면 세계적 수준의 대학과 글로벌 기관 유치 그리고 개발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리더십의 확보 등이 성공의 관건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RTP는 특히 한국의 세종시 건설과 관련해 그동안의 개발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익명을 요구한 리서치 트라이앵글 관계자는 "오는 5월 대덕에서 개최되는 제27회 국제과학단지협회(IASP) 총회에 릭 웨들 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RTP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며 "RTP 대표단은 방한기간에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도 만나 세종시 건설과 관련해 협력방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