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1일 행정부처의 세종시 이전계획을 전면 백지화, 세종시 개념을 행정중심 복합도시에서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전환하고 삼성, 한화, 롯데, 웅진 등 대기업을 유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수정안을발표했다.
기존 계획보다 10년 앞당겨 오는 2020년까지 집중개발되는 세종시에는 재정(8조5천억원)과 민간(4조5천억원), 과학벨트(3조5천억원)를 합쳐, 원안(8조5천억원)의 두배 가까운 총 16조5천억원이 투입된다.
또 세종시에는 고려대와 KAIST가 들어서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지정을 통해 가칭 세종국제과학원이 설립돼 중이온가속기 등 첨단과학 연구시설이 갖춰진다.
이로써 지난 2002년 9월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행정수도 건설' 대선공약에서 비롯된 세종시는 여야의 치열한 논란 끝에 2005년 3월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개념이 다소 바뀌었다가 이번 수정안 발표를 계기로 전면적 변화의 기로에 서게 됐다.
그러나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이 세종시 수정에 반대하고 있는데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박근혜 전 대표 등 친박(친 박근혜계) 의원들이 '원안 고수'를 주장하고 있어 수정안의 국회 처리 과정에서 여야는 물론, 여여(與與)간에도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르면 금주중 특별기자회견을 갖는 것을 비롯해 충청권 방문과 박 전 대표 면담 등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정운찬 국무총리와 한나라당 지도부 및 친이계(친 이명박계)도 적극적인 여론전과 친박계 설득에 나설 예정이어서 당분간 찬.반 양측이 맞부딪히면서 정국의 긴장도는 높아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종시 수정 문제는 그 향배에 따라 이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 동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다 가깝게는 2.3월 조기 전당대회, 6월 지방선거, 멀리는 2012년 대선 구도에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상당기간 메가톤급 이슈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 각부처가 세종시뿐 아니라 다른 현안 업무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해 국가적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라며 "세종시는 이 지역 특성에 맞춘 특화된 발전과 지역성장, 나아가국가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순수한 정책사안"이라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날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세종시 발전방안'을 공식 발표하고 세종시 수정에 시동을 걸었다.
정 총리는 "과거의 약속에 조금이라도 정치적 복선이 내재돼 있다면 뒤늦게나마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나라를 생각하는 지도자의 용기있는 결단 아니겠느냐. 세종시건설은 정치적 신의 문제 이전에 막중한 국가 대사"라며 수정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세종시를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전환하면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기업 유치부문에서는 국내외 5개 기업이 신재생에너지, LED(발광다이오드), 탄소저감기술 등 녹색산업 분야에 4조5천150억원을 투자, 2만2천994명을 고용하는 것으로 일단 확정됐다.
먼저 삼성은 165만㎡ 부지에 2조500억원을 투자, 1만5천800명을 고용할 계획이며 삼성전자와 삼성SDI, 삼성LED 등 5개 계열사에 걸쳐 태양광발전, 연료용전지, LED, 데이터프로세싱, 콜센터, 바이오헬스케어 등의 분야에 진출할 예정이다.
한화(60만㎡, 3천44명, 1조3천270억원, 에너지분야), 웅진(66만㎡, 2천650명, 9천명, 웅진케미컬.에너지 통합연구센터), 롯데(6만6천㎡, 1천명, 1천억원, 롯데식품연구소), SSF(오스트리아 태양광제품 업체, 16만5천㎡, 500명, 1천380억원)도 입주계획을 밝혔다.
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거점지구로 지정해 인근 대덕, 오송, 오창 등과 연계된 연구거점 330만㎡를 조성하고, 내년부터 2015년까지 3조5천억원을 들여 세종국제과학원을 설립해 그 산하에 중이온가속기, 기초과학연구원, 융복합연구센터, 국제과학대학원을 갖추기로 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에는 내년부터 20년간 총 17조원이 투자되며 이에 따른 고용효과는 20년간 연평균 10만6천명, 생산효과는 11조8천억원, 부가가치효과는 5조1천억원으로 추산됐다.
대학의 경우 고려대와 KAIST가 각각 100만㎡ 부지에 6천12억원과 7천700억원을 투자해 대학원과 연구기능 위주의 대학을 운영하기로 했다.
고교의 경우에는 세종시 입주기업과의 컨소시엄을 통해 자율형 사립고 한곳을 2012년 이전에 설치하고 '자율형+기숙형' 공립고를 최소한 한곳, 외고와 과학고, 예술고, 외국인학교 또는 국제고를 각각 한곳씩 개교한다는 방침이다.
투자유치를 위해서서는 부지 50만㎡ 이상 수요자에게는 미개발상태의 원형지를 공급하되 개발비용을 제외해 인근 오송 등 산업단지의 절반 수준인 36만∼40만원/3.3㎡에 제공하고, 신규투자 기업에 대해서는 소득.법인세 3년간 100% 감면하는 등 기업도시 수준의 세제지원을 하기로 했으며, 혁신도시에도 동일한 지원을 하기로 했다.
우수한 정주 여건 조성을 위해 국내 최초의 도시형 국립수목원을 갖춘 중앙공원(280만7천㎡)과 아트센터, 국립도서관, 도시건축박물관,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의가칭 천연약재박물관 등 문화시설의 건립도 추진된다.
이 밖에 당초 2017년 완성예정이던 광역교통망은 2015년까지, 2030년까지 끝낼 계획이던 도시교통은 2015년까지 모두 마치기로 했다.
정부는 금주내로 입주 예정 기업.대학들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이달 중순국토연구원과 행정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 주관으로 공청회를 실시하는 등 다각적으로 여론을 수렴한 뒤 행정도시특별법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제출해 오는4월 국회까지는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한편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은 의원총회와 기자회견 등을 열어 정부가 세종시 수정을 공식화한 데 대해 전면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또 한나라당내 친박(친 박근혜) 진영도 행정부처 이전이 백지화된 세종시 수정안은 국민 신뢰를 도외시한 '약속위반'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