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유명 사치품 매장 거리로 임대료가 비싸기로 소문난 슬로안 스트리트. 인근에 해러즈 백화점이 있고 살바토레 페라가모, 루이뷔통 등 세계적 유명 사치품 상점들이 즐비한 이 거리에 지난 2008년 5월 25일 한국에서 건너온 가방이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우리 눈에 익은 패션 브랜드 MCM의 런던 직영매장 1호점. 하필 문을 열고 얼마 안있어 글로벌 금융위기가 강타하는 바람에 그대로 문을 닫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 매장을 2년째 꾸려오면서 까다롭다는 현지인들 속에 브랜드 인지도를 조금씩 심어 오고 있다.
원래 MCM은 독일의 1990년대 유명 브랜드였지만 성주그룹이 인수해 이제는 대한민국 브랜드가 됐다.
"영국인을 비롯한 유럽인은 물론 아랍인, 인도인, 러시아인, 아시아인들 사이에 브랜드 인지도가 매우 높아졌어요. 단골도 생겨난 거죠." 현지 매장 매니저 제이드 킴은 "MCM이 세계적 유명 고급제품의 반열에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자랑했다.
이 매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대부분 한국에서 생산돼 직수입된 것들이다. 중국이나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으로 공장을 옮기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만 바느질땀 하나 하나 `메이드 인 코리아'가 훨씬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생산되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한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가죽.PVC.텍스타일 제품은 3~9.7%의 관세가 현재 부과되고 있기 때문에 한-EU FTA가 발효되면 MCM의 경쟁력은 더욱 커진다. 현재 MCM의 유럽지역 판매가격은 루이뷔통, 구찌, 페라가모 등 세계적인 사치품 브랜드의 70% 수준이다.
FTA 효과에 힘입어 이 보다 가격을 더 낮춰 경쟁력을 키울수도 있지만 MCM은 생각이 다르다. 세계적 유명 사치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자존심에서 가격 경쟁에만 매달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FTA에 따른 원가절감 분은 품질 향상과 인지도 제고를 위한 마케팅 등에 쏟겠다는 전략이다.
전세계 유명 백화점을 통한 판매 이외에 MCM 해외 직영매장은 영국 1개, 독일 3개, 미국 1개, 중국 2개 등 모두 7개고 올 상반기에 독일 1개, 중국 1개를 추가로 열 예정이다. 또 런던을 찾는 쇼핑객들이 반드시 들러가는 대규모 유명 사치품 쇼핑 타운인 비스터도에도 MCM 아울렛 매장이 조만간 들어선다.
지난해 런던.독일 직영 매장의 매출액은 300만 유로(한화 약 45억원) 가량이지만 향후 3-4년 내 직영 매장 확대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공인받는 유명 사치품의 반열에 확고하게 오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제이드 킴은 "현지 인지도가 없으면 비스터에 들어가는 것 조차 힘들다"면서 "비스터에 매장을 갖는 것 자체가 이미 현지 브랜드 인지도를 확고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런던의 직영매장은 사실 물건을 판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적인 명품으로 인정받기 위해 유럽은 물론 중동, 아시아 시장에 MCM의 브랜드를 알리는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 현지 부유층은 물론 중동,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부자들이 쇼핑을 많이 오는 곳이기 때문에 당장 눈앞의 매출 늘리기 보다는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힘을 쏟고 있다.
㈜성주 김성주(53) 회장은 "MCM의 주요 대상은 실용성을 추구하며 여행을 즐기는 소비자들로 사회적인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특정 브랜드를 구매하는 부류와는 달리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스타일리시한 전문직 종사자들"이라고 규정했다. 유럽지역에서는 30~50대 여성들이 주 고객층으로 품질을 우선시하고 단순한 `럭셔리' 그 이상을 추구한다는 게 김 회장의 분석이다.
로고에 열광하지 않는 지적인 소비자들을 목표 고객으로 삼는 만큼 어떤 스타일에도 다양한 멋을 연출 할 수 있는 실용성, 그리고 고급스러운 품질, 합리적인 가격을 강조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반영해 다양한 연출이 가능한, 뒤집어서 사용할 수 있는 쇼퍼백을 유럽시장에 내놓아 인기를 끌기도 했다.
김 회장은 1990년 구찌를 수입해 국내에 공급하면서 유명 사치품의 기획, 광고, 판촉 전략을 익혔고 1992년 MCM의 국내 라이선스권을 따내면서 생산, 기획, 판매에 대한 감각을 키워오다 2005년 11월 MCM을 인수했다. 그는 "명품을 들여다 판매하면서 `단순히 수입해 팔지만은 않겠다'던 다짐을 실천에 옮긴 것뿐"이라며 "MCM이 독일 브랜드로 출발했지만 이제 한국 브랜드로 뿌리를 내렸고 세계적 브랜드로 도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명품은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김 회장은 "FTA 발효되면 우리 제품이 10~20%의 가격 경쟁력이 생길 것으로 기대되지만 가격이 아닌 세계 최고의 품질과 실용성,디자인으로 경쟁력을 갖춰가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회사 잘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한국의 패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며 "명품시장의 식민지화를 극복하면서 MCM이 한국 중소기업의 글로벌 모델이 되고 젊은이들의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버드대학 출판부는 중소기업인 MCM이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갖도록 한 김 회장의 경영전략 사례를 담은 단행본을 조만간 발간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MCM 같은 유명 사치품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한국 중소기업들의 섬유, 의류, 잡화류 제품은 품질이 뛰어나므로 FTA를 계기로 유럽 시장을 개척할 여지가 많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관세 철폐에 따른 가격 인하 효과에만 기댈 경우 중국, 인도 등의 저가 공세에 밀릴 수 밖에 없으므로 품질에 대한 신뢰를 더욱 쌓고 현지인 정서와 감각에 맞춘 디자인을 개발하고 꾸준한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개별 업체의 노력에 코트라와 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업계 단체와 정부의 적극적 뒷받침이 가세할 경우 유럽은 우리 중소업체들에도 큰 기회가 될 전망이다.
유럽을 공략하라 ④MCM 가방.패션
최고 품질에 실용성.디자인으로 `도전장'
입력 2010-01-2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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